「로미오와 줄리엣」은 상상력의 산물인가, 아니면 살아 있는 육신과 영혼의 겅험에 따른 체험담인가. 지독히 아름다워 죽음의 신마저 질투의 서늘한 눈길을 보낸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을 창조한 셰익스피어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올 아카데미상에서 1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이같은 흥미진진한 상상력의 소산물이다.
제작자이자 작가인 마크 노먼은 아들과 셰익스피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던 중 『셰익스피어는 어떤 영감을 받아 「로미오와 줄리엣」을 탄생시켰을까』라는 의문에 빠졌다고 한다. 아름다운 시어와 비통한 감상이 전편에 넘실대는 「로미오와 줄리엣」은 마치 난파되기 직전의 배 위에서 위험한 곡예를 하듯 수많은 열혈 가슴을 조이면서 불을 지피지 않았던가.
각본을 쓴 톰 스토파드와 감독을 맡은 존 매든은 셰익스피어의 은밀한 뒷얘기를 찾아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1593년 한창 촉망받는 신인 작가였던 젊은 청년 윌리엄 셰익스피어(조셉 파인즈)는 부채에 허덕이는 한 극장에 회심의 홈런을 날려줄 야심작을 구상한다. 처음에는 해적단이 등장하는 희극이었다. 당대의 군주 엘리자베스 여왕이 코미디를 좋아한 탓으로 극장들은 너나 할것없이 개와 망나니를 등장시킨 엉터리 코믹물에 푹 빠져 있었다.
어느날 배우 오디션에 찾아온 남장 여인 바이올라(기네스 펠트로)를 보고 야릇한 기분에 휩싸인 셰익스피어. 유부남임에도 불구하고 꽃보다 더 아름답고 꿀보다 더 달콤한 여인 바이올라에 대한 사랑에 빠진 그는 미친듯이 즐겁고 화기(和氣) 가득한 희곡을 써간다. 당시 여자는 무대에 오르지 못한다는 금기를 깨고 바이올라에게 남자 옷을 입혀 로미오 역을 맡기면서 둘만의 밀어는 더욱 깊어지고 노골적이 되어간다.
그러나 부유한 장사치의 딸인 바이올라는 귀족과의 정략결혼이 예정되어 있었기에, 셰익스피어는 점차 로미오로 바이올라는 줄리엣으로 뒤바뀌면서 작업이 진행중인 희곡은 비통하고 가슴을 쥐어짜는 비극적 드라마로 변해간다.
관객은 점점 「셰익스피어 인 러브」가 아닌 진짜배기 「로미오와 줄리엣」 속으로 빨려들어가면서, 재치넘치고 가슴을 녹여내는 초콜릿같은 대사에 흠뻑 빠져들어간다. 정교한 퀼트를 연상시키는 완벽에 가까운 시나리오로 무장된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셰익스피어 추종자들이 만들어낸 재치 넘치고 가슴 찡한 명편이다. 【이용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