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시각] 남아공의 사면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넬슨 만델라 대통령 취임 이듬해인 지난 1995년 진실과화해위원회를 설립했다. 백인의 흑인 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로 말미암은 각종 범죄를 공개하고 보복 대신 화해를 유도하기 위해서다. 위원회는 인권 침해를 비롯해 고문·살인 등을 저지른 가해자에게 과거 자신이 저지른 행위를 자백하게끔 민형사상의 사면(赦免)을 시행했다.

당시 사면에 대한 논란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국가적으로 자행된 범죄를 모두 밝혀내고 처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범죄 관련자는 많았지만 증거는 적었다. 결국 국민 통합과 미래 지향적 가치 정립을 대의로 내걸고 사면이라는 카드를 꺼낸 것이다. 다만 사면의 기회는 자신의 과오를 공개적으로 시인하고 불법적 사건을 입증하는 이들에게만 주어졌다.

사면의 대가로 단편적인 경험과 억측, 분노와 원한으로 기억될 뻔했던 진실을 얻게 된 셈이다. 말 그대로 역사를 바로 세우게 된 것이다.


비슷한 시기인 1997년 12월22일 대한민국에서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지역감정 해소와 국민 대화합이라는 명분 아래 사면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퇴임을 눈앞에 둔 시점에 전격적으로 단행한 것이다. 당시 전씨는 내란죄로 1심에서 사형,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었다. 이후 국민들은 대통령 재임 때 빼돌린 돈으로 호의호식하는 전씨를 통해 뒤틀린 역사를 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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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역대 정권의 사면이 대통령 측근을 비롯한 정치인과 재벌을 중심으로 이뤄지다 보니 사면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많은 이들은 특권층에 부여하는 대통령의 특혜로 인식한다. 사면이 헌법에서 규정한 법 앞의 평등과 삼권분립 원칙을 훼손하고 사법부의 결정을 무효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지적도 있다.

오는 8월15일 광복절 70주년을 앞두고 특별사면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정치권과 재계·교육계 등 각계의 기대감이 높은 만큼 찬반 여론도 엇갈린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통령은 '국민적 합의 원칙'을 되새겨야 한다. 과거처럼 아무런 원칙 없이 귀 막고 철판 깔고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남아공 헌법재판소 초대 재판관인 알비 삭스는 저서 '블루 드레스'에서 진실과화해위원회의 활동이 울림을 가질 수 있었던 배경을 "대화로 다른 모든 관점을 듣고 모든 진영으로부터 의견을 수용했기 때문"이라고 회고했다. '거대 사건을 다룰 때 주요 관심사는 사건에 대한 사회적 이해와 인식을 이끌어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국민의 공감대를 이끌어냈다는 사실은 지금도 되새겨야 할 교훈이다.

/김성수 사회부 차장 ssk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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