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 몸값이 문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을 전후해 또다시 한국 사회의 갈등이 위험수위다. 국회에서 최루탄이 터지는가 하면 정복을 입은 경찰서장이 시위대에 린치를 당하는, 기존 질서를 부정하는 일들이 동시다발로 일어나고 있다. 사회의 불만이 봇물처럼 터지는 게 보기만 해도 무섭다. 지난 10월26일 서울시장 선거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20, 30대의 분노가 급류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다. 태국 방콕을 집어삼킨 대홍수로 변하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다. 과거 우리 사회는 독재 정권과 민주화 세력 간 대결로 진통을 겪었다. 노사분규도 심각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벼랑 끝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밀려나고 있다는 절망감은 그리 크지 않았다. '88만원 세대'인 20, 30대들에게 세상은 암울하고 가혹하기만 하다. 일부만 소위 '디슨트잡(decent jobㆍ괜찮은 일자리)'을 꿰찰 뿐이다. 대졸자 절반 이상이 실업자가 되고 나머진 연봉 2,000만원도 안 되는 비정규직 신세다. 결혼도 하기 힘들다. 전셋값마저 너무 비싸다. 사랑하는 남녀가 가정을 이루고 자기를 빼닮은 2세를 키우는 오손도손한 인생의 재미를 애저녁에 박탈당한 것이다. 이렇게 사회의 불안정성이 커지고 세대 간, 계층 간 갈등이 심화된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1997년이 나온다. 외환위기 이후 사람값이 일부를 제외하고 너무 싸졌다. 3.3㎡당 2,000만원을 넘는 아파트값을 30대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 어떻게 장만하나. 정치권과 정부는 당장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으로 반값 등록금이다, 무상복지다 호들갑이다. 하지만 무차별적인 퍼주기보다 사람값을 끌어올리는 게 먼저다. 민주당은 외환위기를 극복했다고 자부하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을 기억할 것이다. 그때 한 노사정 합의가 지금의 비정규직, 다시 말해 1,000만명에 가까운 저소득 계층을 양산했다. 당시 내수경기를 띄우느라 펑펑 키운 부동산 거품이 결혼도 못하는 불혼(不婚) 세대를 낳았다. 최저 저축률에 9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 대출, 닫힌 지갑과 얼어붙은 내수경기는 김대중ㆍ노무현 정권의 부동산 정책이 만든 '프랑켄슈타인'이다. 공공 부문에서 9만7,0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당정의 대책이 눈길을 잡아 끈다. 사람값을 올리는 거다. 일부 언론과 경영자총협회 등은 우려를 나타냈지만 사람값을 계속 싸게만 받으려 하다가는 혁명이 올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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