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인사철마다 투서로 날이 새고 진다(금융계비리 처방전은 없나)

◎상대방 “흠집내기”… 문민정부서도 여전관치인사, 청탁대출, 부실로 연결되는 금융비리가 극단적으로 표출되는 마당이 있다. 은행가의 공공연한 비밀이자 서로가 감추고 싶어하는 치부인 투서가 바로 그것. 손홍균 서울은행장에 대한 검찰의 수사도 투서로 시작됐다. 투서는 은행 인사철이 가까워질수록 극성을 부린다. 청와대와 검찰 등에는 은행장이나 임원 등을 비방하는 투서가 무더기로 쌓이게 된다. 특히 내년 정기주총에서 1백명의 임원이 임기만료되는 은행권의 투서에 관계기관은 골머리를 앓고 있는 지경이다. 은행의 한 임원은 『최근 만난 정보기관 사람의 왜 그렇게 투서가 많으냐는 말에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고 탄식했다. 투서는 은행장 등 임원이나 승진 대상자의 비리, 치부, 부정 등을 고발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외부인들은 알 수 없는 은행 내부의 일들을 속속들이 파헤친 내용도 적지 않다. 한눈에 내부인의 투서라는게 짐작된다는 것. 사정, 감독 당국에서는 익명의 투서는 무시한다는게 원칙이다. 청와대도 무기명 음해성투서는 무시하겠다고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사정당국의 입장에서도 가끔 지나쳐 버리기 어려운 경우도 적지 않아 선별처리가 불가피하다고 관계자는 전했다. 투서는 공정한 룰이 없는 사회환경에서 싹트고 활개친다. 페어플레이가 없다 보니 결과를 인정할 수 없어 결국 투서로 이어진다는 것. 은행관계자는 『지금까지 정치권 등 외부의 입김이 은행 임원 인사에 깊숙이 개입한 결과 이런 현상이 생겼다』고 진단하면서 『문민정부하에서도 투서 풍토는 늘어나면 늘어났지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고 단언했다. 지난 91년 S씨와 경합끝에 S은행장에 오른 K씨의 뒤에는 대통령의 인척이던 K의원이 있었다. 당시 금융계의 황제로 불리던 L씨는 S씨를 밀었으나 결과는 다르게 나타났다. 이를 두고 금융계는 L씨의 금융계에 대한 영향력이 사라지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였다. K의원에게 줄을 대려는 은행장 후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이들중 몇몇은 은행장 자리를 따내는데 성공했다. 정치권과 연결된 정실인사로 은행장이 되지 못했다고 판단한 패배자측의 선택은 투서로 나타난다. S은행뿐 아니라 팩스사퇴서 소동을 일으켰던 H은행의 Y전행장, 투서와 검찰 수사, 역전드라마를 연출한 지방 C은행 사례 등은 모두 내부 투서로 발단된 것들이다. 투서는 은행장급뿐 아니라 고참부장선에서도 일어난다. 차기주총에서 임원 선임이 유력한 라이벌의 비리를 잡아내 흠집을 내자는 것. 줄서기와 편가름의 이전투구속에서 은행 경영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문제는 투서가 성립될 수 있는 환경이 여전하다는 점이다. 은행의 한 임원은 『사정당국이 말로만 투서 배척을 내세을 뿐 실제로는 금융권 길들이기에 이용하고 있다』며 분개했다. 지난 7월 유엔국제해양재판소 재판관에 선출된 한국인 P박사의 선출과정에서 투서가 등장했다. 유엔 1백85개 회원국중 투서로 제동포를 헐뜯은 나라는 한국이 유일했다는 이야기는 우리사회의 뿌리깊은 투서고질을 반증한다.<권홍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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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홍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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