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중국에 심는 한국기업의 혼(삼성편)] 2. 성공가도 뿌려진 시행착오

“산싱 띠앤즈핀 페이창 하오.(三星 電子品 非常 好ㆍ삼성 전자제품 정말 좋습니다)” “애니콜 페이창 하오.(애니콜 매우 좋다)” 중국인 90%는 삼성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오래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삼성`하면 곧 바로 입 밖으로 이 답이 튀어 나온다. `삼성=고급브랜드`, `애니콜=최고` 라는 인식이 확실히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 제품이 처음부터 이런 평가를 받은 것 일까. 아니다. 그 동안 겪어 온 수 많은 시행착오의 결실이다. 지난 90년 중국의 개방개혁 이후 중국에 진출한 수많은 업체들이 제각기 비싼 수업료를 톡톡히 지불하며 곤혹을 치러야 했듯 한국 최고의 기업인 삼성도 중국에서 쓰디쓴 실패를 맛보았다. 삼성은 97년까지는 세탁기에서부터 VCR, 전자레인지에 이르는 전방위 생산체제를 구축하고 공격적인 경영을 펼쳤다. 결과는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13억 인구와 신흥중산층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는 것에 고무돼 범용제품을 무작정 생산하다 어려움을 당한 것이다. 삼성 브랜드 인지도는 처참할 정도로 구겨졌고, 적자행진이 이어진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6년이 지난 2003년 현재, 삼성 브랜드는 절반에 가까운 중국 소비자가 인지하고, 90% 이상의 소비자가 선호하는 일류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중국인들의 머리 속에 `잡동사니를 파는 그저 평범한 기업`에서 `고급 제품을 파는 일류 기업`으로 완전히 탈바꿈한 것이다. 이 같은 이미지 변신은 곧 바로 매출증가로 이어졌다. 98년 14억 달러에 불과하던 매출이 ▲2000년 39억 달러 ▲2002년 68억 달러로 늘어났고, 올해는 100억 달러가 넘을 정도로 `고공 비행`을 하고 있다. 적자행진도 99년을 기점으로 멈췄다. 98년 3,700만 달러에 달하던 적자가 99년 5,000만 달러로 줄더니 2001년에는 2억2,800만 달러의 흑자를 이루는 성과를 얻어냈다. 삼성의 약진은 아직도 끝을 모르고 계속되고 있다. 중국 디지털 가전시장에서 소니, 모토로라, 노키아 등 해외 경쟁자들을 제치고 브랜드 영향력 2위에 올라서는 저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렇다면 평범한 싸구려 외국 브랜드로 인식됐던 `삼성`이 최고로 탈바꿈한 비결은 무엇일까. 혹독한 체질개선을 통한 `선택과 집중` 전략을 구사하고, 이를 통해 고급화와 차별화를 기했다는 점이다. 삼성은 한국이 외환위기를 맞이하던 97년부터 변신을 시작했다. 당시 삼성은 중국 내 23개 사무소를 폐쇄하고 지사 직원을 대거 감축하는 한편, 7개 공장에 대해 독자생존을 지시하는 강력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와 함께 생산제품도 일부 고부가 품목으로 한정하고 마케팅을 이에 집중했다. 삼성식 구조조정을 중국에서도 실시한 것이다. 삼성은 기업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고객들의 요구를 정확하게 만족시킬 수 있는 환경을 먼저 조성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중국 소비자들은 중국 기업을 통해서는 접할 수 없는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철저한 사전준비도 삼성의 성공을 이끌었다. 삼성은 중국을 하나의 거대한 시장으로 보지 않았다. 대신 진출대상 지역별 특징을 관찰, 다른 브랜드와의 차별화를 시도해 `고급 이미지`를 심은 것이다. 박진형 KOTRA 베이징 무역관장은 “삼성 브랜드 성공은 대도시와 동부연안지역에 있는 10개 주요도시를 목표시장으로 정하고, 젊은 층과 고소득층을 대상으로 `상위 5% 부자잡기` 마케팅이 힘 이었다”고 말했다. 우수한 기술을 바탕으로 경쟁력을 높인 것도 삼성을 `하이테크 기업`으로 자리잡게 한 결정적인 요인이다. 정보통신, 반도체 등 전자분야의 종합적인 기술과 제품을 갖고 있는 삼성이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 다른 기업들이 넘 볼 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 한 것. 모영주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 베이징 수석대표는 “베이징 통신연구소, 쑤저우(蘇州)ㆍ항저우(杭州) 반도체연구소 등에서 나오는 연구개발 결과는 삼성의 핵심경쟁력을 높이고, 히트상품을 수없이 쏟아내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디지털 브랜드`로의 이미지 혁신도 브랜드 고급화를 앞당겼다. 삼성은 99년부터 `삼성의 기술과 제품으로 고객을 디지털 세계로 초대한다`고 약속하고, 이에 부합한 제품을 속속 내놓으며 `디지털 시대의 리더`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김철환 한국무역협회 베이징 지부장은 “삼성은 중국 소비자들에게 상품의 질 뿐 아니라 ▲애프터서비스 ▲유통 ▲마케팅 등 모든 영역에서 `톱`이라는 인식을 갖게 만들었다”면서 “이 인식이 확산되면 될수록 삼성의 브랜드 영향력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애니콜 신화창조의 거점 삼성베이징통신연구소 중국 베이징 서북부 외곽에 자리잡은 중관춘(中關村) 거리. 겉 모습은 그리 화려하지 않지만 이곳은 명실상부한 `중국 정보기술(IT)산업의 메카`다. 여기에는 ▲베이징대, 칭화대 등 70여 개의 저명한 대학 ▲중국과학원을 비롯 213개의 정부 연구기관, 노키아 등 세계적인 기업의 연구기관이 밀집해 있다. 이 때문에 중관춘은 `중국의 두뇌`, `중국의 실리콘 밸리`로 불린다. 중관춘 한 가운데 삼성베이징통신연구소가 자리하고 있다. 바로 애니콜 신화를 창조한 곳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170명의 연구원들이 곳곳에서 팀별로 모여 과제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이들의 눈에는 `중국에서 최고`를 넘어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의지가 불타고 있는 듯했다. 지원인력 2명을 빼고 모두가 중국인으로 구성된 이 연구소에서는 ▲3세대 이동통신 표준 ▲삼성 제품에 대한 기술적인 보완 ▲중국에 적합한 제품 개발 등에 대한 연구를 주로 하고 있다. 최근에는 다른 연구소들 보다 한발 앞서 4세대 이동통신 표준 연구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단순히 본사에서 지시하는 변방기술만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핵심기술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연구성과도 성대하다. 개소 3년째인 지금까지 수행한 대형 연구 프로젝트만 31개에 달한다. 질적인 면에서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이미 90건의 특허를 출원을 했고, 그 가운데 일부는 국제 표준으로 채택됐다. 이 같은 성과는 중국 정부도 인정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자체 기초ㆍ기반기술 확보를 위해 국가 연구 프로젝트로 추진중인 `863과제` 가운데 4세대 이동통신 표준에 관한 연구를 외자기업 중 처음으로 이 연구소에 의뢰한 것이 이를 증명해 준다. 베이징우전대학과 공동으로 진행중인 이 연구는 이미 1기 과제를 마쳤고, 내년에 2기 과제를 마무리하게 된다. 이 연구소는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 연구개발 방식에 의존했던 것에서 탈피, 한국 방식에 국제적인 운용방식을 가미해 세계적인 연구소를 발돋움하겠다는 포부다. 왕통(王彤) 소장은 “우리 연구소는 이미 정착, 성장단계를 넘어 도약기에 들어섰다”며 “CMMI(국제소프트웨어인증) 획득 등을 통해 국제표준에 맞는 소프트웨어 개발에 주력, 그 실력을 인정 받겠다”고 강조했다. 중국에서 삼성의 일류화를 지원하고, 이를 넘어 세계적인 기술을 확보하겠다는 왕 소장과 연구원들의 강력한 의욕이 `디지털시대의 리더`가 되겠다는 삼성의 꿈을 더욱 영글게 하고 있다. [왕통 연구소장] "삼성내 최고실적내는 연구소 만들것" “최고의 삼성 해외연구소를 만들겠습니다.” 왕통((王彤ㆍ사진) 삼성베이징통신연구소장은 “중국은 아직 인건비가 저렴한 우수인력이 많고, 시장잠재력이 크다”면서 “이 같은 경쟁 우위를 활용하면 삼성 내에서 가장 좋은 실적을 내는 연구소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좀 더 욕심을 낸다면 중국에서의 선두는 물론, 글로벌 연구개발센터로 손색이 없도록 키우겠다”고 강조했다. 왕 소장은 앞으로 “연구소의 모든 운영을 시스템화해 사람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조직에 의해 운영되는 연구소를 만들겠다”면서 “이를 위한 작업이 상당부문 진척됐다”고 밝혔다. 왕 소장은 특히 “`세계적인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연구원들의 의지가 대단하다”면서 “이는 삼성 고부가제품의 중국 행(行)을 앞당기는 초석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내 삼성 브랜드 이미지 제고와 관련 “왕 소장은 중국에 맞는 특화 기술과 제품을 발굴하는 등 현지화 작업에 힘쓰는 것이 삼성 이미지를 높이는 지름길”이라며 “자체 교육 및 연구개발 과제 수행으로 기술 자립도를 높여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베이징=고진갑특파원 go@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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