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보다 안정… 「저비용」 정착시켜 “제2황금기”한국경제는 지난 95년말부터 총체적 난국에 봉착해 있다. 성장률의 둔화(7%)와 물가상승(5∼6%), 그리고 사상 최대의 경상수지 적자로 인한 세계 제2의 채무국으로의 전락, 고비용·저효율의 경제구조 등…. 일본, 유럽도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반면 미국 경제는 93년이후 호황국면이다. 가히 「새로운 경제」를 구가중이라 할 만하다.
국내총생산(GDP)의 경우 93년이후 2∼3%씩 지속적인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제조업 생산량은 지난해 11월 한달에만 0.8% 상승했으며 주택건축시장이 9.2%, 그리고 소비자의 소비가 0.5% 증가했다. 이자율도 지난 한햇동안 7%를 유지했다.
대외경제 면에서 보면 96년 3분기에 4백80억달러의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지만 수출실적은 전년대비 12% 증가했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미국경제의 호황이 단순한 경기순환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지난 몇년간 계속된 구조적 변화에서 비롯됐다고 판단한다.
미국경제의 구조적 변화는 크게 ▲통신·정보분야의 기술혁명 ▲시장경제의 자유화 ▲세계로의 시장 확대로 나눌 수 있다.
통신·정보분야의 새로운 기술개발에 따른 물류비의 대폭적인 감소를 실현했다. 이에따라 미국경제는 경기침체나 인플레가 도래하더라도 그 증폭에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예컨대 기업의 상품재고관리의 경우 과거에는 팔리지 않는 상품의 재고정리를 위하여 제품생산을 줄이고 노동자들을 감원했다.
이는 필연적으로 경기침체의 폭을 확대하는 악순환을 가져왔다. 그러나 지금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 상품재고를 적절히 유지할 뿐만 아니라 상품판매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에 신속하게 대처함으로써 생산관리의 효율적 조정을 기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대공황과 같은 난국은 피할 수 있게 됐다.
미국정부의 경제정책은 시장의 효과적이고 원활한 움직임을 방해하는 요소들의 제거에 맞춰져 왔다.
레이건정부 당시의 비규제 정책은 클린턴 정부에서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미국정부의 정책을 통화·금융, 재정분야, 경제규제의 세 분야로 나누어 살펴본다.
연방준비이사회(FRB)는 지난 79년이후 인플레 억제에 상당한 성공을 했다. 인플레 억제정책은 경제전반에 신뢰와 낙관적 분위기를 만들었고 안정에 크게 기여했다. 즉 무리한 성장위주 정책을 조심스럽게 포기했다고 말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후 미국경제는 수차례 위기를 거쳤는데 그 위기로 부터 교훈을 얻은 것이다.
한국경제의 추락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고비용, 두마디로 표현하면 고비용 저효율이다. 고지가, 고임금, 고이자, 고물류비는 고물가로 집약된다. 한국정부가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먼저 경제주체들이 신뢰할 수 있는 물가안정 정책을 펴나가야 한다. 중앙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역할이 크게 기대된다.
연방정부의 재정정책도 경제안정에 이바지 하고 있다. 95∼96년 회계연도의 연방정부 예산적자는 아직도 크지만 81년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지금도 연방의회와 대통령은 균형예산을 가장 중요한 현안으로 삼고 있다.
클린턴정부는 앨 고어 부통령을 연방정부 규제 정리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삼아 정부규제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다해왔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한국의 김영삼정부도 경제규제 완화를 주장해 왔지만 기업가들은 조금도 변했다고 생각지 않는다.
아직도 기업들을 외국으로 떠나가게 만든다고 말한다. 산업의 공동화 현상을 고물가, 고비용, 정부의 규제때문이라 해도 무리한 말이 아닐 것이다. 정부, 의회, 기업, 언론, 학계의 비규제정책에 관한 연구와 실행이 지금부터라도 다시 비중있게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지난 83년 GDP의 12%에 불과하던 미국의 대외경제의존도는 96년에 이르러 26% 이상을 점하게 되었다. 또 미국의 새로운 경제 구축에 하이테크 제품, 서비스의 수출증가는 85년이후 GDP성장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미국경제가 지금도 경상수지면에서 적자를 내고 있지만 시장의 세계화를 통한 대외경제 활동의 확대는 놀랄만 하다.
냉전체제가 붕괴되면서 세계경제는 자유시장 자본주의와 신중상주의의 자본주의로 양분화됐다. 이는 소위 양극화 자본주의 시대로 불린다. 미국은 냉전시대엔 일본의 중상 자본주의 정책을 수용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미국은 결국 신흥 개발국의 중상주의를 거부하면서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깃발을 펄럭이고 있다.
미국의 대외 경제정책을 보면 첫째, 미국 달러에 대한 경쟁적인 평가절하를 단행하고 있는 나라들, 예컨대 일본의 엔·달러 환율과 한국의 원·달러환율변화에 대하여 외환시장에서 경쟁과 신뢰라는 두 수레바퀴를 적절히 조절해 나가는 환율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둘째, 중국·일본·한국과의 경우에서 보듯 쌍무 무역협정을 통한 자유시장 정책의 추진이며 셋째는 다자간 무역협상의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다.
한국경제를 살리는 길은 변칙적인 금융지원이나 부동산 투기, 「중상주의적」잔재를 하루 빨리 청소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세계시장에서 상품의 질로 승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연구·개발에 과감한 투자를 지속해야 한다. 그것이 질은 물론 가격경쟁에서도 이길 수 있는 길이다. 궁극적으로 경제는 경제인에게 맡기는 자유시장 자본주의를 추진해야 한다.
구호만 요란한 개혁은 포기하는 것이 낫다. 조그마하지만 견실한 변화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출발점이다.<워싱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