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는 속담이 있지만 다른 위치에서 보면 니은 자로 보일 수도 있다. 부엉이를 '낮에는 눈뜬 장님'이라고 볼 수도 있고 밤의 제왕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어느 자리에서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사안에 대한 평가와 판단이 달라진다.
박근혜 대통령이 오는 3월 말까지 대타협을 이뤄줄 것을 요구한 노사정위원회의 노동시장 개편방안은 어느 위치에서 보느냐에 따라 정반대의 주장이 가능한 난제다. 지금 노동시장 개편과 관련해 합의를 이뤄내야 하는 고민거리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근로시간 문제다. 이는 경영자나 관리자 입장에서는 노동생산성 문제와 연결된다.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최장 근로시간을 단순히 근로시간의 길고 짧음으로 보느냐, 아니면 노동생산성으로 보느냐에 따라 각각의 주장이 달라진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지난 2013년 기준으로 1인당 2,163시간 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멕시코(2,237시간)에 이은 2위에 해당하는 긴 노동시간이다.
통계치가 있는 1980~2007년까지 27년간 줄곧 노동시간 1위를 차지하다 2008년부터 멕시코에 1위 자리를 넘겨줬다. OECD 회원국 중 연간 노동시간이 2,000시간을 넘는 곳은 우리나라를 제외하면 멕시코와 칠레 등 3~4개국뿐이다. 근로자 입장에서 보면 긴 노동시간을 줄이는 게 현안일 수밖에 없다. 노동의 대가로 개인의 삶을 잃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최장 근로시간 속 떨어지는 생산성
하지만 경영자나 관리자 자리에서 보면 이는 경쟁력을 저하하는 요인이다. 우리나라는 제조업과 무역 규모에서 최상위권으로 평가 받지만 노동생산성은 평균치를 밑돈다. 국내총생산(GDP)을 취업자 수로 나눈 1인당 노동생산성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2012년 OECD 34개국 가운데 24위에 그쳤다. 긴 노동시간 탓에 GDP를 총 노동시간으로 나눈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28위로 평가됐다. 이는 OECD 회원국 평균의 80%, 미국에 비하면 58.7%에 그친다.
관리자나 오너 입장에서는 근로시간이 긴 게 화가 날 수밖에 없다. 노동시간이 길어 추가수당은 더 나가는데 생산성은 낮기 때문이다. 더구나 경쟁국에 가격경쟁력에서 밀려 실적이 급감하는 상황을 감안하면 근로자의 요구가 무리하다고 볼 수 있다.
두 통계가 모두 맞는 얘기다. 다만 근로자 입장에서 보느냐, 아니면 경영자나 관리자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요구사항과 주장이 달라진다.
또 다른 시각차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문제다. 정규직은 비정규직에 대한 처우개선에는 동의하면서도 자신들이 피해를 입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정규직 임금체계를 고수하면서 비정규직에 대한 처우 개선이 이뤄지기를 원한다. 월급쟁이 입장에서는 누구나 그럴 것이다.
하지만 경영자 입장에서 보면 도저히 수지를 맞출 수 없는 문제다. 가뜩이나 임금이 올라 경쟁국에 밀리는 상황에서 비정규직마저 처우를 개선하라면 어떻게 경쟁력을 유지해야 할지 해법을 내놓으라고 되묻고 싶은 심정일 수도 있다.
오는 3월 말까지 대타협을 이뤄내기를 원하는 노동 문제에 대한 갈등의 핵심이다. 이를 자신의 위치에서만 주장하니 논쟁이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갈등 양상만 증폭되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객관적으로 내놓고 어떤 식으로든 타협점을 찾아내야 한다. 갈수록 성장률이 낮아지는 저성장 추세가 고착화되는 상황에서 일자리를 유지하면서 경쟁력도 갖춰야 하는 게 우리의 당면과제다. 한계에 봉착한 주력산업과 새로운 먹거리 부재, 내수침체 등이 지금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이다.
한발씩 물러나 일자리만은 유지해야
경영자는 긴 노동시간을, 근로자는 낮은 생산성을 고민하면서 서로 한발씩 물러서는 대타협의 발판을 만들어야 한다. 생산성도 노사가 한마음이 돼야 올라간다. 그렇지 않으면 가뜩이나 위기에 처한 기업경영 환경에 노사분쟁이 심화하고 기업은 이를 피하기 위해 생산시설을 해외로 옮길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일자리가 더 줄어든다. 이미 주요 대기업들의 해외생산 비중이 50%를 넘었다.
노동시장 개편은 그나마 줄어드는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