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생긴 초상부동산배 한중대항전에 관한 얘기를 좀더 하고 넘어간다. 지난번 아시안게임 단체전에서 한국팀에 일방적으로 패한 중국이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시키려고 이 대회를 만들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예전부터 중국기원은 6∼7명이 출전하는 한중대항전을 구상한 바 있다. 한국팀은 선수층이 얇기 때문에 6∼7명의 단체전이면 승산 있다고 공언해 왔다. 이 대항전에 대한 중국기원의 집념은 1992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진로배가 그것이다. 한중일 3국이 각각 5명의 선수를 내세워 넉다운방식으로 치러진 진로배는 서봉수의 9연승 신화로 우리 기억에 생생하다. 5년간 열렸던 이 대회에서 한국은 단 한 차례도 우승을 놓치지 않았다. 약이 오를 대로 오른 중국은 선수 수효를 늘리자고 주장했고 1994년에 롯데배 한중대항전이 열리게 된다. 양국이 7명씩 선수를 내세워 14판을 두기로(넉다운 방식이 아니었음) 했는데 중국의 염원이 빛을 보게 된다. 4회까지 열린 롯데배에서 한국은 첫해에만 우승을 차지했을 뿐 제2, 3, 4회때는 석패를 당하고 만다. 관전기 담당이었던 필자는 덕분에 중국 여행을 뻔질나게 다녔다. 백72는 수습의 맥점. 이 수로 그냥 참고도1의 백1에 두는 것은 하수의 착상이다. 흑75로는 참고도2의 흑1에 내려서서 흑5까지 우변의 실리를 챙기는 것도 유력했는데 이세돌은 실전처럼 외세를 두텁게 만드는 길을 선택했다. 선수를 빼어 흑81을 두는 것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