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욕적으로… 한없이 참담해진 일본
아베 핵심전략 출발부터 삐걱재정악화 우려에 국채가격 흔들… 미·일 동맹도 경고음
신경립기자 klsin@sed.co.kr
'위기돌파 내각'을 자처한 일본의 아베 신조 정부가 경제ㆍ안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내건 핵심 전략이 출발부터 순탄치 않다. 정부의 경기부양 규모가 윤곽을 드러내자 시장에서는 당장 재정악화 우려와 함께 국채 가격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미국과의 동맹 강화를 위해 서둘러 진행되던 아베 총리의 방미계획도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바쁜 일정'에 밀려 다음달 이후로 연기됐다. 오는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초조하게 출범한 아베 정권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점차 커지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아베 총리가 첫 해외 순방국으로 다음주 중 인도네시아ㆍ태국ㆍ베트남 등 동남아 3개국 방문을 검토하고 있다고 8일 전했다. 미일동맹 강화를 외교안보 전략의 주축으로 삼은 아베 총리는 취임 이전부터 미국 방문을 서둘렀다. 하지만 미국 측이 오바마 대통령의 2기 취임식 등 국내 일정을 이유로 난색을 표명한 탓에 동남아로 행선지를 튼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의 미국 방문과 미일 정상회담은 다음달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미일 정상의 조기회동 불발은 단순한 일정조율 차원을 넘어 약해진 미일동맹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미국은 최근 아베 정권의 역사인식 문제 등 동북아 정세를 악화시키는 일본의 극우행보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대한 일본의 뜨뜻미지근한 태도도 미일 관계를 어색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니혼게이자이는 "TPP교섭 참가에 대한 자민당 내부의 반대여론 때문에 정부가 선뜻 참가 의사를 표명하지 못하는 것도 조기 정상회담을 가로막는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대규모 경기부양을 통한 디플레이션 탈출을 목표로 내걸며 시장에 훈풍을 일으켜 온 '아베노믹스(아베 정권의 경제정책)'도 막상 윤곽이 드러나자 시장의 우려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7일 13조엔 이상의 대규모 추경예산에 더해 5조엔이 넘는 건설국채를 발행하겠다는 아베 정권의 경제대책이 전해지자 시장에서는 재정악화를 염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한때 0.84%까지 올라 지난해 8월 이래 4개월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아직 낮은 수준이기는 하지만 재정우려가 거세질 경우 국채금리 상승 압력이 높아지면서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니혼게이자이는 장기국채 금리가 1%를 넘어서면 주가에도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우려는 아베노믹스가 초래한 엔화약세 덕에 모처럼 화색이 돈 재계에까지 번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게이단렌ㆍ일본상공회의소ㆍ일본경제동우회 등 재계의 3대 단체가 공동 주관한 신년 하례식에 참석한 경영자들이 아베 총리의 부양 기조를 환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엔화폭락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고 전했다.
중장비 제조업체 고마쓰의 사카네 마사히로 회장은 지금의 엔화약세가 '셀 재팬(Sell Japan)'으로 이어져 엔화가 급락하는 데 대해 우려를 나타냈으며, 특히 아베 정권이 경기부진을 이유로 소비세 인상을 연기할 가능성을 경계했다고 WSJ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