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도메인(인터넷주소) 서비스가 정부 주도로 이뤄진다면 인터넷 주소창의 주권(主權) 회복, 소규모 창업자 등의 마케팅비용 대폭 절감, 자국어 도메인 서비스 모델의 본격 수출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습니다."
인터넷 주소창에 한글 등을 입력하면 이를 영어 주소로 변환, 포털 등을 거치지 않고도 해당 사이트로 곧바로 연결해주는 원천기술(자국어 도메인 기술)을 가진 넷피아의 이판정(48ㆍ사진) 대표는 요즘 새로운 도약을 꿈꾼다.
한글 도메인 서비스로 한때 300억원의 매출을 올리던 넷피아는 지난해 10월 한글 도메인 서비스를 정부에 기부하겠다고 선언해 주목을 끌었다. 정부는 현재 한국인터넷진흥원 등을 통해 수용 여부 등을 검토하고 있다.
이 대표는 "한글 도메인을 정부가 관리하면 중소기업들은 주소창에서 회사명ㆍ브랜드 검색이 가능해져 그동안 과하게 지불했던 온라인광고비를 줄일 수 있고 정부는 기업의 온라인 브랜드 가치를 보호해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가 지난 17년간 키워온 핵심자산을 정부에 선뜻 내놓겠다고 결단한 것은 넷피아의 도약을 위한 선택이기도 했지만 한글 도메인이 공공재라는 판단에서다. 물론 넷피아는 한글 도메인 운영권을 염두에 두고 있다.
자국어 도메인 기술은 한글을 포함해 96개국에 활용할 수 있는데 한글의 경우 인터넷 주소창에 '백악관'이라고 입력하면 주소창에 영어 주소(www.whitehouse.gov)를 직접 치거나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백악관'을 입력한 후 영어 주소(www.whitehouse.gov)를 클릭하지 않아도 백악관 사이트로 곧장 연결된다.
이 대표는 "한글 도메인은 단순히 '바로가기' 기능에 그치지 않는다. 사이버경제에서 기업의 브랜드를 높이는 수단"이라며 "온라인사업의 첫번째 성공 요건이 광고ㆍ마케팅을 통한 기업 인지도 확보인데 소자본 창업자 입장에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투자는 큰 부담"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창업자들이 초기에 회사나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파워링크ㆍ플러스링크ㆍ비즈사이트(네이버), 스폰서링크ㆍ프리미엄링크ㆍ스페셜링크(다음) 등 포털에 키워드광고를 하는데 구매와 연결되지 않아도 클릭 수에 따라 회당 1,000원을 포털에 지불하는 식"이라며 "실제 중소 정수기 제조회사인 P사는 키워드광고비로 월 10억원을 쓴다"고 덧붙였다.
넷피아는 자국어 도메인 기술에 대해 60여건의 국내외 등록특허를 보유하고 있지만 소프트웨어업계의 '골리앗'인 마이크로소프트(MS)가 10여년 전부터 관계사 리얼네임즈 등을 동원해 인수합병(M&A) 및 특허소송 병행전략을 집요하게 펼치는 바람에 힘겨운 시절을 보냈다. 그래도 지난해 매출 60억원을 기록했다.
넷피아는 2000년 리얼네임즈를 내세운 MS의 매입(3,000만달러) 제의가 알려져 관심을 받기도 했다. 그는 "50여개 한글단체가 '한글인터넷추진총연합회'를 결성해 반대 데모를 벌이는 모습을 보고 온라인에서 한글의 주권을 지켜야겠다고 마음먹었다"며 "그러나 잇따른 법정공방에 대응하면서 회사 경영이 기울고 급기야 2007년에는 신장 이식을 받을 정도로 몸도 망가졌다"고 당시의 힘겨운 상황을 떠올렸다.
'버림으로써 비로소 세상을 얻는다'는 불교의 가르침을 깨달은 그는 "나 혼자 살겠다 마음먹었다면 회사를 매각하고 여유롭게 살았을 것"이라며 "인터넷 주소가 기업의 온라인 브랜드라는 것을 알려온 노력이 서서히 성과를 보이고 있다. 10만명이 넘는 넷피아의 유료회원이 이를 말해준다. 불공정한 주소 가로채기를 없애고 공정한 웹경제 인프라를 구축하겠다는 새로운 비전이 생겼다. 덤으로 얻은 인생 여기에 바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