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2월19일] 퐁


[오늘의 경제소사/2월19일] 퐁 권홍우 편집위원 퐁 게임은 간단했다. 흑백 화면에서 움직이는 것은 단 3개. 위아래로 움직이는 라켓과 점으로 표시된 공이 전부였다. 화면 상단에 표시되는 점수까지 포함해도 눈에 보이는 것은 단 5개였지만 퐁 게임기 앞에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때가 1972년 11월 말. 얼마 안 지나 대형 오락실과 선술집의 주문이 잇따랐다. 오락기의 주종도 핀볼(pinball) 게임기에서 퐁으로 바뀌었다. 전자오락기기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퐁 게임기 등장 4년 후에는 ‘블록 격파’가 발매되며 전자오락의 저변을 더욱 확산시켰다. 퐁과 블록 격파 게임을 개발한 주인공은 놀런 부시넬(Nolan Bushnell). 유타주립대학 재학 중 유원지에서 포커로 잃은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공대생들의 장난감이던 전자오락을 실용화한다면 돈을 벌 수 있겠다고 생각한 후 7년간 연구에 매달려 29세에 퐁을 선보였다. 시련도 없지 않았다. 최초의 제품인 컴퓨터 스페이스는 기능이 뛰어났지만 게임 규칙이 복잡해 실용화에 실패하고 말았다. 고배를 마신 후 부시넬은 친구와 500달러를 공동 투자, 바둑의 ‘아다리’에서 이름을 빌린 아타리(Atari)사를 설립해 퐁으로 성공가도를 내달렸다. 블록 격파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던 1976년 그는 갑자기 회사를 워너브러더스영화사에 2,800만달러를 받고 넘겨버렸다. 퐁 게임의 특허(1974년 2월19일)를 따냈어도 특허분쟁이 잇따르고 모조품까지 쏟아졌던 탓이다. 부시넬은 회사 매각 이후 이렇다 할 제품을 내놓지 못했지만 ‘전자 게임의 아버지’로 기억되고 있다. 전자오락의 주도권 역시 1979년 ‘스페이스 인베이더’ 개발 이후 일본으로 넘어갔어도 부시넬의 흔적은 여전하다. 애플사를 창업한 스티브 잡스도 아타리의 연구인력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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