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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 소속 의원들이 금산(금융자본과 산업자본) 분리 원칙을 확대ㆍ강화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법안의 주요 내용은 대주주 적격성심사 강화,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지분한도 축소, 보험ㆍ증권사 등 비(非)은행 금융지주회사의 일반 자회사 보유 금지, 대기업집단 보험ㆍ증권ㆍ카드사 등의 계열사 지분에 대한 의결권 제한 강화 등이다.
금산분리 정책은 지난 1900년대 초반 미국의 스탠다드오일사가 소유 은행의 고객예금으로 전국의 석유개발권을 독점함으로써 발생했던 폐해를 막기 위해 도입됐다. 그런데 미국은 1998년 금융서비스현대화법을 통해 금산분리를 완화했다. 우리나라처럼 금융시장 규모가 작은 유럽 국가들은 금융산업의 탄생 초기부터 유니버셜뱅킹 시스템으로 금산융합을 통한 규모의 경제를 추구해왔고 현재도 이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유럽 움직임과도 동떨어져
따라서 새누리당 실천모임을 비롯한 정치권에서 주장하는 금산분리 정책 강화는 시대적 흐름에 역행할 뿐 아니라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정책이라 하겠다.
실천모임이 주장하는 금산분리 강화 방안 중 대주주 적격성심사 강화는 대기업이나 그 특수관계인의 대주주 자격을 제한하자는 것이어서 재고할 필요가 있다. 최근 저축은행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검증되지 않은 개인자본가 중심으로 저축은행의 대주주가 되도록 한 현행 규정이 부도덕한 저축은행 대주주들을 양산한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융기관의 대주주 적격성 여부는 대기업이나 특수관계인의 참여를 제한하기보다는 대주주의 도덕성ㆍ건전성에 비중을 두는 쪽으로 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지분한도 축소 역시 시대에 역행하는 정책이 될 수밖에 없다. 이미 론스타 사태를 통해 겪었듯이 대기업의 은행소유 제한은 결국 외국자본들만 은행을 소유하도록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우리나라 은행들의 외국인 주식소유 비율이 그 어느 나라보다 높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 법제가 국내 은행산업을 외국인들이 지배하도록 조장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은행지분 소유에 대한 통제는 대기업 참여 제한을 강화하기보다는 외국자본의 자격을 중심으로 제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정할 필요가 있다.
보험ㆍ증권 등 비은행 금융지주사의 일반 자회사 보유금지 정책 역시 오늘날 산업이 일방적으로 금융을 지배하거나 반대로 금융이 산업을 지배할 수 없는 시대라는 점을 감안해볼 때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금융정책이라 할 수 있다. 현행 보험업법은 보험사의 계열사 출자를 자기자본의 60% 이내로 제한하고 총자산의 3% 이내에서만 타 회사 출자가 가능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따라서 고객 자산을 총수 마음대로 계열사 주식 매입에 사용한다는 가정하에 실천모임이 내놓은 금산분리 강화 법안의 방향은 현실을 외면한 포퓰리즘 입법이 될 수 있다.
대기업집단에 속한 보험ㆍ증권ㆍ카드사 등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5% 초과분)에 대한 의결권 제한 역시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제2금융권 계열사 지분에 대한 의결권을 제한하면 국내 상장사 가운데 일부는 적대적 인수합병(M&A) 위협에 놓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외국인 시장지배력만 높여줄 뿐
따라서 국민의 재산권을 지켜야 할 국민의 수임자들은 본분을 고려하지 않은 잘못된 생각을 재고해야 한다. 실천모임의 금산분리 강화 방안은 우리 금융산업 발전 및 국가경쟁력 제고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신한ㆍ국민ㆍ하나은행의 외국인 지분율은 이미 60%를 넘어섰고 국내 진출한 INGㆍ메트라이프ㆍ알리안츠 등 9개 해외 보험사의 시장점유율은 19%에 이른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금산분리 강화는 외국인들이 우리 금융시장을 지배하도록 조장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최근 수조원대의 부실을 초래한 저축은행사태를 보면서 대기업집단 등 산업자본보다는 개인 자산가들의 자본이 우리 금융시장을 더욱 혼란스럽게 하거나 도덕적 해이가 심화될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누가 금융기관을 지배하는 게 바람직하느냐보다는 어떻게 국내자본을 활용해 우리 금융산업이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고 국제경쟁력을 확보하느냐에 초점을 맞춰 개선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국민적 지지를 받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