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적기조례를 떠올리며

김규복

"자동차는 핸들을 잡는 운전수, 석탄을 공급하는 화부, 붉은 깃발을 들고 차량의 50미터 전방을 걷는 조수까지 총 3명이 운행해야 한다. 붉은 기를 들고 걷는 조수는 말이나 기수에게 자동차의 접근을 예고해야 한다. 자동차는 말을 놀라게 하는 증기나 연기를 내면 안 된다. 또 시가지에서는 시속 3㎞ 이상으로 달릴 수 없다."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이것은 1865년 영국에서 시행된 'The Locomotive Act'라는 법의 골자이다. 붉은 깃발에서 착안해 '적기조례(赤旗條例ㆍRed Flag Act)'로 불리는 이 법은 자동차의 속도제한 등을 규정해 도로교통법의 효시로 거론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잘못된 규제와 문제점을 이야기할 때의 사례로 자주 등장한다.


이 법은 1865년부터 1898년까지 약 33년간 시행됐다. 대로에서 마차를 끄는 말이 자동차를 보고 놀라서 폭주하는 사고를 막기 위해 제정됐다고 한다.

그런데 이 법은 결과적으로 영국에서 자동차산업이 발전하는 데 큰 제약이 됐고 그 사이 카를 벤츠와 고틀리프 다임러가 가솔린엔진을 개발한 독일에 자동차산업의 주도권을 넘겨줘야 했다. 멀리 앞을 내다보지 못한 규제가 중요한 산업의 성장에 치명적인 걸림돌이 된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 '경제민주화'가 화두가 되고 있다.


경제민주화는 큰 틀에서 보면 부의 편중을 법으로 완화하자는 의미로 해석된다. 사실 우리 사회에 빈부격차나 양극화 문제에 대한 인식이 있어 왔고 이를 입법으로 해소하자는 경제민주화의 기본 취지에 대다수가 공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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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경제민주화와 관련된 세부 법안들이 논의되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일부 법안의 경우 방향에 치우쳐 시장의 자율성을 제약하는 내용이 포함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면 현재 논의되고 있는 '제2금융권 대주주 적격성 심사'등은 기업의 안정적인 경영활동에 부담이 될 소지가 있다. 실제로 적격성 기준에 미달하면 주주의 의결권이 제한되고 심지어 10%를 초과하는 지분은 강제로 매각해야 한다면 금융회사의 경영권에 심각한 위협이 아닐 수 없다.

대기업이나 대주주와 관련된 제도에 잘못이 있다면 마땅히 고쳐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과도한 심사와 규제를 통해 경영에 부담을 주는 것은 규제 과잉이다.

경제민주화는 공정한 경제를 지향해야 하며 한쪽으로 치우치는 일방적인 정의가 돼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서민과 중산층이 함께 상생하는 입법이 돼야 한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옛 말이 있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의미다.

150년여 전에 있었던 적기조례의 우(愚)를 떠올리며 관련 당국의 혜안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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