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일동제약 지분 늘린 녹십자 속내는] 인수합병 통해 영업 시너지 키우기 관측

녹십자, 보유지분 2배 끌어올려 경영 참여 선언

일동 "적대적 M&A 좌시못해" … 주총이 분수령



"먹는 알약에 강점이 있는 일동제약과 백신·주사제 전문회사인 녹십자의 조합은 그야말로 최상이죠. 이 두 회사가 합친다면 연 매출 1조원이 넘은 거대 제약사가 단숨에 생기는 것이니…."

녹십자가 최근 일동제약 주식 보유량을 2배가량 늘리며 경영권 참여를 선언함에 따라 두 회사 간의 인수합병(M&A)설이 다시 불붙고 있다.


21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최근 녹십자는 일동제약 보유지분을 기존 15.35%에서 29.36%로 두 배 가까이 늘렸다. 윤원영 일동제약 회장 등 일동제약 최대주주 측과의 지분 격차는 불과 4.8%포인트에 불과하다. 보유 목적도 '단순 투자'에서 '경영 참여'로 변경했다.

업계에서는 녹십자가 급작스럽게 일동제약 지분율을 2배로 끌어올린 것에 대해 오는 24일 일동제약의 임시주총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일동제약은 지난해 10월 지주사 전환을 결정했다. 지주사 전환이 제약업계의 대세지만 대주주의 지분율이 높아지면서 경영권을 강화하는 효과도 있다. 그러나 이번 임시주총에서 지주사 전환을 확정 지으려 했던 일동제약의 움직임은 지분을 끌어올린 녹십자로 인해 브레이크가 걸릴 확률이 커졌다.


일동제약 인수를 염두에 두고 있는 녹십자가 지주사 전환에 반대표를 던질 것이라는 것이 제약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지주사 전환 안건이 주총을 통과하려면 참석 주주의 3분에2가 찬성해야 한다. 통상적인 주총 참석률이 지분 70~80%인 점을 감안할 때 녹십자의 동의 없이 지주사 전환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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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업계에서는 녹십자가 느닷없이 일동제약 인수에 뛰어든 이유를 녹십자의 경영권 승계 시나리오에서 찾고 있다. 녹십자 창업주 2세인 허은철 녹십자 부사장이 경영권을 승계하게 되면 숙부인 허일섭 녹십자 회장이 일동제약을 맡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허 부사장은 고(故) 허채경 한일시멘트그룹 창업주의 손자로 부친과 녹십자를 함께 창업한 고 허영섭 회장의 차남이다. 허 부사장은 지난해 말 그룹 인사 때 핵심 요직인 기획조정실장을 맡게 됐다. 당시 제약업계 호사가들은 허 회장이 자신의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는 조카를 요직에 앉혔다는 점에서 예상 외 인사를 단행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분쟁이 아닌 자연스러운 경영권 승계가 이뤄질 경우 허 회장이 일동제약을 맡게 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에 대해 녹십자의 한 관계자는 "주총 때 어떤 입장을 취할지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며 "M&A가 논의되지도 않는 상황에서 경영권 승계 시나리오는 완전한 허구, 소설 같은 얘기"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일동제약 지분을 늘린 것은 인지도 높고 영업력이 강한 일동제약과 긴밀한 동반자적 관계를 구축하고 서로의 강점을 살려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 녹십자의 설명이다.

이처럼 사태가 급박해지자 그동안 불편한 속내를 감춰왔던 일동제약이 마침내 포문을 열었다.

일동제약은 이날 공식 입장을 담은 자료를 통해 "임시주총을 앞둔 시점에 경영참여로 목적을 기습 변경하고 무리한 차입을 통해 주식을 매집한 의도가 과연 우호적 협력을 위한 것인지 되묻고 싶다"며 "녹십자의 명분 없는 적대적 행위를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24일 열릴 임시주총이 녹십자의 의도를 보다 확실하게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제약업계의 한 관계자는 "녹십자와 일동제약이 합치면 연 매출 1조2,000억원대의 대형 제약사가 탄생하는 것으로 글로벌 제약사로 도약할 수 있는 규모"라며 "다만 제약업계는 다른 분야보다 동료의식이 강해 적대적 M&A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많은 만큼 녹십자가 무리하게 합병을 추진할지에 대해서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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