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결국 디폴트… 13년 전 합의 실패가 아르헨 발목 또 잡았다

美 헤지펀드 채권단 요구 수용땐 빚 최대 5,000억달러까지 늘어

돈 있지만 '기술적 디폴트' 선택

글로벌 경제 파장은 제한적일 듯


아르헨티나가 13년 만에 또다시 디폴트(채무불이행)를 맞았다. 지난 2001년 첫 디폴트 당시 채권단과 100% 합의를 이루지 못한 게 결국 아르헨티나의 발목을 잡았다. 이에 따라 살인적 물가와 재정적자·환율불안 등 삼중고에 시달리는 아르헨티나 경제가 더 깊은 나락으로 추락할 수 있다는 경고음이 나온다. 다만 이번 사태는 국가의 지급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일부 채권단과의 협상실패에 따른 '기술적 디폴트'라는 점에서 글로벌 경제에 미칠 영향은 일단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아르헨티나 정부 대표단과 미국의 헤지펀드 채권단은 이자지불 시한 마지막날인 3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이틀째 줄다리기 협상을 벌였지만 합의안 도출에 실패했다고 외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악셀 키실로프 아르헨티나 재무장관은 협상결렬 뒤 뉴욕 소재 자국 영사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가의 미래를 위험에 빠뜨리는 협정에 서명하지 않을 것"이라며 "(헤지펀드 채권단은) 타인의 불행을 이용하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했다. 억만장자 폴 싱어가 이끄는 헤지펀드 채권단의 반응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이날 협상결렬 직후 국제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아르헨티나 국가신용등급을 기존 'CCC-'에서 '선택적 디폴트(selective default)'로 강등하면서 "채무를 상환할 경우 신용등급을 재조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는 13년 전 디폴트의 연장선상에서 발생했다. 당시 지급불능 상태였던 1,000억달러 상당의 부채를 놓고 아르헨티나 정부와 채권단은 2005년과 2010년에 열린 두 차례의 협상에서 채무의 92.4%를 달러당 25~29센트 수준으로 삭감하는 채무 조정안에 합의했다. 그러나 이에 동의하지 않은 NML캐피털·아우렐리우스캐피털 등 미국계 헤지펀드가 전액상환을 요구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헤지펀드들의 요구 금액은 원금과 이자를 다 합해도 15억달러(약 1조5,300억원)에 불과하다. 아르헨티나 외환보유액은 300억달러에 못 미치지만 이를 갚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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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부채를 100% 상환할 경우 2005년과 2010년에 합의한 루포(RUFO) 조항에 근거해 아르헨티나 정부가 갚아야 할 빚은 최대 5,000억달러까지 불어나게 된다. 이 조항에는 "채무조정에 참여하지 않은 채권자들에게 2014년까지 더 우호적인 지급조건을 제시할 경우 채권단도 같은 조건을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아르헨티나가 헤지펀드들의 요구에 절대불가 방침을 고수하며 기술적 디폴트를 선택한 데는 이 같은 배경이 자리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번 사태는 2001년의 상황과 근본적으로 다르며 이 때문에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마우로 로카 골드만삭스 이코노미스트는 "아르헨티나 정부와 채권단 양측이 조만간 합의점을 도출하면서 디폴트 상황을 치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도 "(디폴트 영향은) 최소한에 머물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시장도 우선은 양측이 조만간 원만한 합의를 이룰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디폴트 소식이 일제히 전해진 후에도 글로벌 증시는 안정된 모습을 보였고 아르헨티나의 달러 표시 국채 가격은 이날 10센트가량 치솟으며 2010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블룸버그는 "이번 사태가 조만간 해결될 것이라는 낙관론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아르헨티나가 자금조달 등에서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됨에 따라 가뜩이나 침체된 경제에는 먹구름이 꼈다. 아르헨티나는 40%(민간 조사기관 추정치)에 육박하는 고물가와 재정적자 급증 등에 시달리고 있으며 지난해 4·4분기부터 올 1·4분기까지 2분기 연속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을 기록해 공식적인 경기침체에 빠져 있다. IMF는 아르헨티나의 국내총생산(GDP)이 올해 4,045억달러에서 내년에는 3,788억달러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전망대로라면 중남미 3위 경제국의 지위를 콜롬비아에 내주게 된다.

미국 법원이 임명한 협상 중개인 대니얼 폴락은 "아르헨티나의 디폴트는 기술적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실질적이고 고통스러운 사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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