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의 지혜/마가레테 브룬스 지음, 영림카디널<br>선사시대 동굴벽화·현대사회 디지털 세계등<br>문화적 배경 통한 '형상의 역사' 이면 탐구
| 얀 반 에이크의‘롤린 대주교와 마돈나’ 에서 작가는 돌바닥과 벽의 주름 장식을 그리면서 선원근법을 활용한 유희를 선보였다. 성스러움과 인간적 시선이 공존하는 작품이다. 사진제공=영림카디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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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도마(Thomas)는 예수가 죽었다 부활했음을 의심하다가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자는 복되도다’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고 성경에 기록돼 있다.
보는 것은 힘을 갖는다. 인간의 다양한 감각 기관 중에서 시각이 특히 중요하다는 것에는 대부분이 동의한다. 때문에 ‘형상(形像)’이 우리 주변에 항상 존재한다는 것은 자연스럽다. 인간은 눈으로 형상을 포착하고, 형상은 인간의 의식에서 뒤섞이며 때로는 의식 속에서 또 다른 형상이 탄생하기도 한다. 즉 형상은 정신을 표현하는 한편 정신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봤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진리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정작 우리는 환시와 사실을 확실히 구별하지 못한다. 위대한 자연을 포착하거나 심오한 정신세계를 표현했다고 칭송 받는, 그림의 예를 보자. 마치 ‘진짜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정확한 모방의 작품을 두고 진실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반대로 몇 번의 붓질과 사소한 물감 자국 만으로도 구체적인 형상을 연상시키기는 충분하다. 파블로 피카소는 “미술이 진리가 아니라는 것은 다들 알고 있지만 미술은 진리를 파악하도록 만드는 일종의 거짓이다”라고 말했다.
화가이자 음악가, 극작가인 저자는 동서양의 역사를 넘나들며 세계 여러 문화 속에 존재하는 형상들에 대해 탐구했다.
최초의 형상 제조자들은 선사시대 원시 인류였다. 알타미라, 라스코1ㆍ코스케ㆍ루피냑 등 단순해 보이는 석기시대 동굴 벽화에도 의식적이고 신중한 예술가의 손길이 담겨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현실의 삶과 사후 세계에 대한 생각을 형상으로 표출했다. 그들은 화장용 석판에 업적과 기원, 과거와 미래, 인간과 신을 모두 담은 그림을 그려 죽은 사람이 머무는 새로운 공간을 만들었다.
형상이 비교적 구체적이었던 이집트와 달리 이슬람 사람들은 형상 제작을 금지 했다. 그들이 단순한 선으로 인간과 세상, 별과 우주를 표현하고 기하학적 기법으로 아름다운 건축과 문양, 장식 미술을 남긴 것은 이 때문이다.
성서의 가르침에 따라 형상 제작이 금기시 됐지만 중세 서양인들은 기독교 세밀화와 성서 필사본을 중심으로 종교적 신념을 새겼다. 또 르네상스 시대에는 원근법이 도입되면서 인간의 시각에서 바라본 세상과 신의 모습이 다양하게 펼쳐진다.
한편 동양의 형상과 그 안에 깃든 정신은 ‘필묵의 도(道)’로 표현된다. 서예와 수묵화는 아무것도 없는 여백을 남기고도 먹물을 머금은 붓의 흐르는 듯한 움직임에 따라서 온 세상을 담는다.
그렇다면 현대 사회를 그리는 형상은 무엇인가. 오늘날은 ‘0’과 ‘1’이 빚어내는 디지털의 세계다. 저자는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는 서로 닮지 않은 형제들인 ‘형상을 그린 그림’과 ‘아무것도 이야기하려 하지 않는 다른 그림’ 사이에서 새로운 대화를 시작하는 곳”이라고 설명한다.
책은 형상의 역사를 소개하며 문화적 배경을 통해 그 ‘이면(behind)’을 보고 있다. 말미에 이르러 책은 이면을 초월한 그 ‘너머 (beyond)’까지 보라고 독자를 자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