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잃어버린 자부심 되찾아야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견디고 한국 전쟁도 버텨냈던 숭례문이 하룻밤 만에 시커먼 잿덩어리로 변했다. 5시간여 동안 타들어간 것은 비단 목조건축물만이 아니다. 600여년간 지켜온 웅장함이 무너져내릴 때 문화민족의 자긍심도 무너졌다. 화재의 현장은 생각 이상으로 처참했다. 뼈대만 남긴 그을린 석축은 발가벗겨져 부끄러운 듯한 모습이었다. 몇 시간을 뿌려댄 소방수는 흙과 뒤섞여 시커먼 진흙탕을 만들어 침통함을 더했다. 무엇이 부족했고 무엇을 잃었나. 이제는 반성할 시간이다. 문화재청은 물론이거니와 서울시 중구청, 소방방재청까지 공공기관 전체의 무관심이 인재(人災)를 불렀다. 그렇다면 국민의 문화재 보호의식은 충분했는가. 지난 2006년 대중에게 개방된 숭례문 앞을 오가며 휴지 하나 주워봤을 시민은 몇이나 될까. 비단 숭례문뿐만 아니다. 전반적인 문화재 보호의식의 결여를 반성해야 한다. 이제 곧 숭례문 복원작업이 시작된다. 완공기한이 정해져 있는 일반적인 건축공사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문화재청이 3년래 완공을 서둘러 발표했지만 성급한 복원보다는 문화재의 역사ㆍ정신적 가치를 되새기는 것이 우선시돼야 한다. 고건축물을 짓는 데 쓰이는 나무는 벌목 후 2~3년간 야적(野積)상태로 건조시켜야 송진도 빠지고 사용가능한 재목이 된다. 최소한 3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 기간을 기다릴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고 그 기다림 속에 숭례문의 역사성을 다시 담아내야 한다. 졸속 중건은 ‘복원’이 아니라 단지 겉모습만 흉내낸 ‘재현’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받기에 충분하다. 또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번 참사를 전화위복으로 삼고 일제시대에 훼손된 숭례문의 원래 모습을 되찾고 성벽부분도 복구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취지는 좋으나 이 역시 기술적인 허술함이 없게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문제다. 해당 공공기관 담당자를 비롯해 국민 모두가 목부재와 돌 나르기에 동참하겠다는 심정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반성의 기왓장을 다시 쌓을 때이다. 이번 참사에 대한 경각심이 이벤트성 반성에 그쳐서는 안 된다. 문화는 삶의 양식이며 문화재는 생활 속에서 보존돼야 한다. 책망에 앞서 책임을 느끼고 잃어버린 문화 자부심을 되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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