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뛰는 관 나는 정… 퇴행하는 금융산업] <중> 끝모를 낙하산… 정피아의 천국

"능력 없어도 내 사람 챙긴다" 사장부터 사외이사까지 꿰차


이슈화 된 인사만 50명 달해 보은 인사·정권 로비 휘둘려

경영·경쟁력 제고 등은 뒷전


재직 중 다른일 겸직 다반사… 정부 요직 징검다리 활용도

"금융의 정치화 악순환" 비난


"실력 있고 금융업에 정통하다면 관피아든 정피아든 출신은 상관없겠지요. 그런데 지금 정피아 논란은 왜 이 사람이 금융사에 왔는지 납득이 안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금융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정관계 인사들의 금융권 입성에 대해 이같이 말하며 "게다가 정말 능력 있는 외부 인사들을 이들 때문에 영입하지 못하는 것도 부작용 중의 하나"라고 지적했다.

전통적인 규제산업인 금융업은 다른 업종과 달리 정관계의 입김이 세다. 그만큼 낙하산을 내려보내기에 적합한 환경이라는 뜻이다. 특히 지난해 세월호 참사로 관피아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커지자 그 빈자리를 정피아가 채우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부터 정피아 인사로 이슈화된 금융업계 인사만 어림잡아도 약 50명에 이른다. 국회의원 또는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이거나 친박 단체 활동 경험이 있는 인사에 실세로 떠오른 서강대 출신까지 어떤 경로라도 현 정권과의 연결고리를 가진 정피아들이 금융사의 대표에서부터 감사와 사외이사까지 점령하며 금융사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물론 단순히 정치권 경력이 있는 인사를 기용한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문제는 금융 관련 경력이나 전문성이 부족한 인물에게 보은성으로 자리를 주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일부 최고경영자(CEO)들은 자신의 영달을 위한 정권 로비 차원에서 정당 출신 인사들을 사외이사 등으로 영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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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임용된 정피아들이 몸담고 있는 금융사의 경쟁력 제고나 수익 창출에 관심을 둘 리 없다. 이 회사 저 회사의 사외이사로 옮겨다니며 높은 보수와 차량 등의 혜택을 누리면서 한편으로는 정치권에 다시 줄을 대는 '양다리' 걸치기도 적지 않다는 게 금융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한 금융사 임원은 "아무리 여론에서 정당성이나 도덕성을 비판해도 정치권의 '내 사람 챙기기' 관행은 수그러들 줄 모르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금융산업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까지 든다"고 탄식했다.

◇사외이사 다섯 명이 당직자 출신인 곳도 있어=우리은행은 지난해 안팎의 예상을 깬 서금회 출신 행장 선임으로 마찰을 빚었다. 국가 기관인 예금보험공사가 대주주로 있는 만큼 우리은행은 행장부터 자회사 직원까지 정치권 개입의 흔적이 짙다. 지난 2012년 총선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를 맡았던 정수경 감사와 한나라당 부대변인 출신의 홍일화 사외이사, 이승훈 청주시장 부인인 천혜숙 사외이사, 박근혜 대선후보 정책자문그룹이었던 최강식 사외이사, 서금회 출신인 정한기 사외이사가 우리은행에 재직 중이며 우리종금에는 국회 정책연구위원 출신의 류명열 사외이사가 포진하고 있다. 최근 우리카드에는 대통령비서실 출신의 4급 인사가 일반 직원으로 채용되기도 했다.

국책은행인 기업은행 역시 박근혜 대통령 대선캠프 출신의 이수룡 감사와 이명박대통령기념재단이사인 한미숙 사외이사가 재직 중이다. 경남은행과 광주은행 등 지방은행에는 각각 한나라당 경남도의원 출신 박판도 감사, 새누리당 나주화순당협위원장인 문종안 사외이사가 자리 잡고 있다.

공공기관으로 가면 정도가 더 심하다. 주택금융공사는 한때 사외이사 다섯 명이 새누리당 보좌관이나 당직자 출신으로 채워져 '새피아의 보금자리'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특히 서종대 전 주택금융공사장이 임기를 1년여 남겨두고 한국감정원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정권 로비용으로 이들을 기용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비교적 관의 냄새가 덜한 하나은행마저 박봉수 전 대통령 비서실 정책기획 비서관을 사외이사로 선임했고 대검찰청 공안부장 출신의 이기배씨와 외교부 주중경제공사 출신의 정영록씨를 사외이사로 삼았다.

금융위원회가 사외이사의 다양성과 전문성을 강화한다며 '금융회사 모범규준'을 시행하고 있지만 유명무실화됐고 그나마 상근 감사에 대한 자격 규정은 없다. 관피아가 독식하던 자리가 정피아로 모두 교체되는 것 아니냐는 한숨 섞인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겸직·철새·회전문…정치판 인사 닮아가=금융사에 입성한 후 정피아들의 행태는 정피아가 안 되는 이유를 알려준다. 금융사에 재직하면서도 다른 일을 겸직하거나 정치권 또는 정부 요직의 징검다리로 금융사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홍기택 산은금융지주회장은 2012년 대통령직인수위원을 맡은 상태에서 농협금융지주 사외이사로 선임돼 금융권 사외이사 겸직에 대한 도덕성 논란이 불거져 사퇴했다. 문제풍 예금보험공사 이사 역시 예보에 적을 둔 채 재보궐선거 공천을 신청해 거센 비난을 받아 지난해 사퇴했다. 대통령직속 국민경제자문위원회 위원을 맡았던 이만우 전 고려대 교수는 농협금융지주 사외 이사를 거쳐 비례대표로 19대 국회의원이 됐다. 이 금융사, 저 금융사의 사외이사로 이동하는 '철새 인사'도 많다. 국민희망포럼 이사를 지낸 서동기 IBK자산운용 사외이사는 한국감정평가협회장으로 가 있고 홍일화 산은금융지주이사는 우리은행으로 옮겼다.

금융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정치권을 통한 낙하산이 판치면서 최근 들어 부쩍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금융인들도 늘어나고 있다"며 "금융의 정치화라는 악순환이 일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박윤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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