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한해 예산의 6분의1 잘라내… 지역공약 줄줄이 빨간불

■ 복지와 바꾼 SOC 예산… 부작용 없나<br>철도·도로 등 공기지연 땐 금융·유지·보수비 눈덩이<br>침체 지역경기에도 치명타<br>'깎고 보자' 발상이 문제… 예산 삭감 속도조절 필요



박근혜 정부는 지난 5월 공약가계부를 발표했다. 135조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국정과제를 이행하기 위해 어떻게 돈을 마련할지 조목조목 밝히는 계산서다. 정부는 당시 씀씀이를 줄이는 세출절감 항목 중 사회간접자본(SOC) 분야를 지목해 오는 2014년에만 1조7,000억원을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하지만 2차 심의가 마무리된 내년도 예산안을 살펴본 결과 실제 요구치는 당초 예상을 뛰어넘었다. 국토교통부에서만 전년 대비 3조8,000억원을 줄이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대부분이 SOC에 투입될 예산을 줄여 만들어내야 할 재원이다.


한해 평균 SOC에 투입되는 예산이 24조원 내외임을 감안하면 6분의1가량을 뚝 떼어내라고 요구한 셈이다.

정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예산안을 이번주 중 청와대에 보고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공약 줄줄이 빨간불=당장 지역공약 이행에 빨간불이 켜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명시한 공약사업은 167개로 총 124조원이 소요된다. 이 중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계속사업에 40조원이 투입되고 신규 사업에는 84조원 내외가 필요할 것으로 정부는 관측하고 있다.


문제는 SOC 예산이 대거 삭감되면 기존 사업이 지연되고 자연히 신규 사업에도 영향이 미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도로ㆍ철도사업은 예산투입이 지연되면 공사기간이 고무줄처럼 늘어나고 이 과정에서 금융ㆍ유지ㆍ보수비용이 발생해 추가 손실 및 공기 연장이 나타나게 된다. 실제로 2000년 이후 예산투입이 지연돼 공기가 늘어난 사업장은 국도를 기준으로 67곳에 달하며 평균 3.5년이 더 소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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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단체의 한 고위관계자는 "교통과 물류는 핏줄과 같은데 기존 사업이 진행되지 않는 상태에서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려고 하면 (핏줄끼리 연결이 되지 않아) 사업타당성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돈이 없어 기존 사업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신규 사업을 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정부는 신규 지역공약사업의 경우 예비타당성 조사부터 시작해 적합 여부를 꼼꼼히 따지겠다는 입장인데 자칫 정권 말까지 가부(可否)조차 알 수 없는 사업이 등장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역 공약가계부를 보면 ▦부산~순천 복선화사업을 완료하고 ▦순천~광주 구간도 조기에 착공해 ▦부산~광주를 연결하는 '남해안고속철도망'을 구축하겠다는 식으로 지역별로 연결돼 있는 사업이 적지 않아 연쇄적 사업 지연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경기침체도 우려=지역 공약 이행보다 SOC 예산 감축에 따른 경기침체가 걱정스럽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SOC는 후방효과(경제 각 주체에 미치는 경제효과)가 다른 사업보다 커 경기침체 시기에 집중 투자대상 중 하나로 꼽힌다.

실제로 대다수 선진국들은 성장 드라이브를 걸 때 SOC에 재정지출을 확 늘려 성장효과를 높인 공통점이 있다. 우리와 경제규모가 엇비슷한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경우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만달러 수준에 접근했을 때 SOC에 각각 368억달러(2004년), 414억달러(2003년)를 투입했지만 우리는 240억달러(2007년)로 이에 미치지 못했다.

이홍일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건설경기의 선행지표인 수주 현황을 보면 올해 들어 급감하고 있어 내년부터 본격적인 찬바람이 불 수 있다"면서 "한해 SOC 예산이 23조원 밑으로 떨어지는 것은 적절하지 않고 삭감에도 속도조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깎고 보자 식 예산편성도 문제=SOC 예산이 대거 감축되면서 주요 부처에 '깎고 보자' 식 감축을 요구하는 행태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국토부의 한 관계자는 "중소기업의 해외 건설시장 확대를 지원하는 차원에서 380억원의 예산을 신청했는데 200억원대로 낮춰잡으라는 기재부의 지시가 떨어졌다"며 "국내 토목 예산을 깎으면 건설사들이 해외로 눈을 돌릴 수 있도록 지원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SOC 예산이 이대로 확정될 경우 지방을 중심으로 상당한 반발이 예상되는 것도 정부로서는 부담이다. 도로를 하나 더 짓느냐 못 짓느냐는 곧장 표심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복지예산을 깎을 수도 없고 돈 나올 곳은 SOC뿐인데 국회 심의를 생각하면 골치가 아프다"고 털어놓았다.


서일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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