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91> 요리하는 남자가 주목받는 이유

한 예능프로를 통해 살림, 요리에 능숙한 모습을 보이며 ‘차줌마’라는 별명을 얻은 배우 차승원씨. /tvN 방송화면 캡처

요즘 TV를 틀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콘텐츠가 바로 요리 프로그램입니다. 멀리 어촌으로 떠나 남자들끼리 생활하며 요리를 하는 모습이나 유명 스타의 냉장고를 털어 재활용한 재료로 맛을 내는 모습 등 세간의 눈길을 끄는 소재가 많습니다. 특히 유명 남자 예능인들이 요리하는 모습은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차줌마’, 어느 어머니나 주부 못지 않게 가정식에 익숙한 배우 차승원 씨의 요리 솜씨는 새로운 전형의 따뜻한 남성상으로 읽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태껏 요리 프로그램이 없었던 게 아닙니다. 방송사 입장에서는 광고주를 구하기도 어렵지 않고, 다양한 스타들을 등장시켜 갖가지 입담을 버무리기 좋은 프로그램이 요리 콘텐츠였습니다. 요리 경연, 요리 해설 등 다양한 소재가 20년 전부터 늘 방송돼 왔습니다. 그런데 유독 요즘 들어 남성들의 요리 솜씨가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얼마 전 어느 빅 데이터 컨설팅 기관이 트위터, 포럼, 블로그 등의 데이터를 조사해 본 결과 우리나라 사람들의 여가 선용은 더 이상 해외여행이나 박물관, 음악회라고 볼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보다는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근교 나들이, 맛집 방문, 친구 만나기 등 매우 ‘소소한’ 것들이 문화소비 행위로 인식되고 있었습니다. 요리는 집안에서 여가를 즐길 때 가족들을 한 가지 관심사로 수렴시킬 수 있는 콘텐츠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나가서 먹어도 되고, 귀찮으면 시켜 먹어도 되는 것을 직접 재료를 사다가 조리한다는 것은 그 자체에 나름의 사회적 의미가 부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가정 생활에서 가장 수동적이었던 남자들이 와이프가 주방에 있는 와중에도 혼자 TV를 버젓이 보고 있는 모습은 용서되지 않습니다. 대부분 2~3인 가구로 살기 때문에 일할 수 있는 사람이 한정적인 탓입니다. 누군가 찌개를 끓이고 있으면 누군가는 생선을 굽는 시늉이라도 하는 처신이 필요합니다. 그냥 허드렛일 정도 하겠다는 처세는 여성들 입장에서 ‘대충 때우다 당신이 요리한 음식을 먹겠다’는 생각을 갖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관련기사



사회적인 분위기도 남성들의 요리에 한몫을 하고 있습니다. 똑똑하고 돈 잘 버는 남자의 모습 못지 않게 보듬어주는 남성상이 인기입니다. 왜냐 하면 남자와 똑같이 여자도 회사나 일상생활 속에서 남들에게 치이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상대적으로 여성보다 지구력과 인내심이 강한 남성이 일찍 퇴근해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은 또 다른 의미의 위로이자 돌봄의 리더십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시간이 ‘나면’ 주방으로 가는 게 아니라, 시간을 ‘내서’ 주방으로 가는 남자들의 모습이 각광받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고 보면 아들뿐만 아니라 며느리도 주방에 들어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던 홍콩영화 ‘음식남녀’의 할아버지가 생각납니다. 도마와 칼을 쥘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가정의 리더십을 자신이 쥐고 있다는 또 다른 표현이겠죠. 남자 여러분, 오늘 그 동안 일과 가정을 모두 이끌고 가느라 고생했을 당신의 부인을 위해 ‘계란 후라이’라도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iluvny23@sed.co.kr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