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후스티샬리스모와 공정사회

현대 '포퓰리즘'의 원조격인 후안 도밍고 페론의 집권시절이던 지난 1950년대 아르헨티나에서는 후스티샬리스모(Justicialismo)라는 말이 유행했다. 페론은 '사회정의'라는 뜻의 후스티샬리스모를 기치로 아르헨티나를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제3의 길로 이끌겠다고 선전하면서 서민층을 위한 선심정책을 마구 쏟아냈다. 심지어 그의 아내이자 정치적 동지였던 에바 페론은 빈민가를 돌며 직접 서민들에게 돈을 뿌렸고 이런 페론 부부에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열광했다. 포퓰리즘에 매장된 아르헨 그러나 페론의 선심성 정책에 아르헨티나 국가재정은 곧 바닥이 났고 선진국 반열에 올랐던 아르헨티나는 순식간에 빈곤국으로 추락했다. 결국 페론은 고국에서 쫓겨나 18년간 파라과이 등에서 유랑생활을 해야 했고 그의 포퓰리즘은 잘못된 정책으로 나라를 망친 대표적 사례로 남았다. 당시 아르헨티나의 포퓰리즘은 가식적인 친서민주의이자 위장된 민주주의였다. 페론의 포퓰리즘 속에는 파시즘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직후 군사전술을 배우러 갔던 이탈리아에서 2년간 머물면서 무솔리니의 파시즘에 심취했고 국가의 부강을 위해서는 국민들이 국가 지도자의 말을 일사불란하게 따라야 한다는 확고한 믿음을 갖게 됐다. 그러기 위해 그는 국민의 높은 지지율이 필요했고 포퓰리즘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페론은 1946년 집권하자마자 강력한 철권통치를 펼치면서 자신의 정치적 노선을 반대하는 수많은 사람을 탄압했다. 페론을 비판한 신문사는 문을 닫아야 했고 그를 비판하는 정치인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페론의 독재에 대한 지식인들의 저항이 커질수록 대중의 환심을 사기 위한 그의 포퓰리즘은 더욱 노골화했다. 이렇게 페론의 철권통치와 포퓰리즘이 9년이나 지속되면서 아르헨티나의 경제는 파탄했고 민주주의도 깊은 상처를 입었다. 우파 포퓰리스트였던 페루의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과 태국의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경우에도 포퓰리즘은 독재정치와 공생했다. 또한 아주 먼 옛날 기원전 2세기 로마시대의 호민관 그라쿠스 형제가 빈민에게 땅을 무상으로 나눠주고 식량을 시장가격보다 싸게 팔아 정치적 지지를 이끌어낸 것도 철권통치를 위한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한 일종의 '매표(買票)행위'였다. 이처럼 독재적인 정치권력이 포퓰리즘을 통해 권력을 키우고 그 권력을 휘둘러 나라살림과 민주주의에 치명상을 주는 악순환이 반복돼왔음을 위의 역사적 사례들이 보여주고 있다. 더 무서운 건 포퓰리즘은 중독성이 강하다는 점이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페론의 포퓰리즘과 철권통치에 그렇게 혹독히 당하고도 1973년 고국에 돌아온 그를 열렬히 반기며 다시 대통령으로 뽑아줬다. 또한 최근 태국의 총선거에서도 탁신의 막내 여동생인 잉락 친나왓(44)이 최저임금 40% 인상, 농민 전용 신용카드 발급 등의 선심정책을 앞세워 총리가 됐고 얼마 전 페루의 대통령 선거에서는 독재자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딸인 게이코 후지모리(36)가 대를 이어 대통령에 당선될 뻔했다. '춤추는 가짜복지'에 경종을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포퓰리즘의 광풍이 불고 있다. 무상급식, 반값등록금, 비정규직 임금격차 해소 등을 제안한 이들은 '복지'라고 주장하지만 반대자들은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한다. 포퓰리즘 논란은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8∙15 경축사에서 '공정한 사회'를 말하면서 커졌다. 이후 정부는 시장의 공정성을 명분으로 시장과 기업경영에까지 개입하려 들었다. 그러고 보면 '공정한 사회'는 페론의 후스티시알리스모와 닮은 듯도 하다. 아마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와 12월 대통령선거가 가까워질수록 정부와 정당은 인기몰이 정책에대한 유혹을 더욱 떨치기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표심(票心)에 춤추는 '가짜 복지'는 진짜 혐오한다. 그걸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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