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10월 21일] 늑장대응 누구 탓인가

‘놀람에서 경악으로, 경악에서 공포로.’ 지난 3주간 글로벌 금융시장을 지켜보면서 느낀 기자의 감정이다. 시시각각 진행되는 위기 상황과 이를 방어하기 위해 각국이 쉴 새 없이 발표한 진정 방안들은 예전에는 듣도 보도 못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만큼 상황은 급박하게 전개됐고 위기감은 극에 달했다. 지난 3주 새 기자가 만났던 사람들 역시 ‘지금 진행되고 있는 위기의 실체’가 무엇이냐는 점 또는 ‘우리 시대에 충분히 컨트롤 할 수 있는 재앙’인지 여부를 가장 궁금해 했다. 심지어 조그만 기업체를 운영하는 한 분은 “지금 갖고 있는 돈을 은행에 넣어둬도 괜찮겠느냐”고 불안감을 드러낼 정도였다. 뉴스를 통해 금융위기를 접하는 일반인이나 기자들의 감각이 이처럼 극도의 공포에 질릴 정도면 금융위기를 직접 대면해야 하는 금융기관 사람들이나 실물 경제 종사자들은 오죽했을까. 특히 국가 경제 전반을 책임지다 보니 가장 광범위하고 정확한 정보를 접하기 마련인 정책 당국자들의 감각은 최소한 기자가 느끼는 위기감의 강도보다 1~2단계 이상 높기 마련이다. [3주 늦은 대응, 피해만 키웠다] 정부가 주말을 기해 대대적인 금융위기 방어대책을 내놓았다. 내년 상반기까지 밖에서 빌려오는 채무에 대해 정부가 지급보증을 서겠다고 했으며 유동성 경색국면을 해소하기 위해 한국은행이 국채와 통화안정증권을 매입하겠다고 했다. 또 10년 전 국가 외환위기의 경험을 되살려 300억달러의 외화를 금융기관에 직접 공급하겠다고 했다. 이 밖에도 급락하는 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투자기반을 넓혀주기로 했으며 중소기업의 자금난 해소를 위해 기업은행을 창구로 삼아 1조원의 유동성을 지원해주기로 했다. 상당히 공격적이고 전향적인 방어대책들이다. 미국을 시발점으로 유럽ㆍ아시아 각국으로 번진 금융위기에 대한 현실감이 이제야 반영되는 모습이다. 되짚어보자면 글로벌 금융위기가 맹위를 떨치기 시작한 후 우리 정부가 방어대책을 적극적으로 마련하기까지 얼추 3주가량 걸렸다. 일상적인 환경이었다면 한 달 안에 정책대응을 하는 것이 그리 험 잡을 일은 아니겠지만 최근 진행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숨이 턱에 찰 정도로 긴박한 위기상황이었다. 이 기간 동안 미국과 유럽 각국은 물론이고 일본ㆍ중국ㆍ싱가포르ㆍ호주 등 우리 주변의 나라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연속적으로 대응방안을 쏟아냈지만 우리는 뒷짐지고 있다가 피해만 잔뜩 키웠다. [위기 감각의 문제인가, 위기시스템의 문제인가]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주 G20 재무장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뉴욕을 방문하면서 상당히 놀랐다고 한다. 그곳에서 강 장관이 만났던 스티븐 로치 모건스탠리 아시아담당 회장, 스티븐 킹 HSBC 이코노미스트, 로버트 루빈 씨티그룹 고문 등 월가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지금 진행되고 있는 금융위기가 결코 단기간에 해결될 사안이 아니라고 진단했단다. 존 윈컬리드 골드만삭스 사장은 아예 “지금은 금리보다 유동성에 중점을 두고 장기자금을 확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까지 조언했다는 후문이다. 강 장관이 뉴욕에서 월가의 분위기를 확인하고 귀국한 것이 지난 16일 오후5시30분. 이후 채 3일이 안 걸린 기간 동안 정부는 외환유동성, 원화유동성, 증시 안정방안과 중소기업 부도 방지를 위한 자금지원이라는 강력한 방어대책을 마련했다. 이쯤에서 따져볼 일이 생겼다. 지금 마련된 정부의 방어대책은 그렇다면 위기감을 새삼 절감한 강 장관의 ‘소신 변화’인가 아니면 정부의 ‘위기감지시스템 오작동’을 월가가 바로잡아 준 것인가. 전자든 후자든 3주간의 늑장대응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덮어썼다. 기왕의 피해보상도 문제지만 앞으로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이번 늑장대응의 원인을 점검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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