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4월 09일] 총선 유감

‘선거’라는 두 자에 걸친 정치적 이벤트는 그것이 무엇을 뽑기 위한 것이든 나름의 의미와 중요성을 지닌다.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와 같이 대의제 정부의 의회와 행정부를 구성하는 국가적 차원의 선거가 지닌 중요성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선거는 공직 후보자들에게 여론과 민심의 향배를 판단하는 하나의 탐침이 되는 것이기에 유권자로서는 선거가 그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그래서 선거라는 민주적 절차는 ‘공영관리’를 받으며 우리 사회에서 제법 ‘대접’받는 것이다. 일부 정치학자들은 이런저런 기준을 들어 국가적 차원의 선거들에 ‘중대선거(critical election)’라는 그럴싸한 이름을 붙여 부르기도 한다. 그렇다면 과연 코앞에 닥친 18대 국회의원 선거는 어떤가. 정치학자들이 즐겨 쓰는 ‘중대선거’라는 그 예의 꼬리표를 달기에 충분할 만큼 중요한 선거인가. 대답은 그리 간단치 않다. 이번 총선은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각 당의 공천싸움에 휘말려 선거판은 늦게 펼쳐졌고 그 바람에 선거 열기는 예전 같지 않다. 토사구팽당한 여야의 중진들이 권토중래를 꿈꾸며 혈전을 펼치고 있는 수도권과 영ㆍ호남 몇몇 선거구만이 세간의 관심을 끌 뿐 유권자들의 반응은 여전히 시큰둥하다. 선거를 며칠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부동층이 여전히 50%를 넘는다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발표도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후보도 정책도 정견도 없다는 이른바 “3무 선거”를 비판하는 목소리 또한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대통령의 ‘경부대운하’ 공약을 불쏘시개 삼아 늦게나마 선거판에 군불을 지펴보려는 야권의 노력도 왠지 일찍부터 김이 새버린 느낌이다. 인물과 정책이 실종된 선거판은 흑색선전과 인신공격이 난무하는 네거티브선거의 난장판으로 전락해가고 있다. 지역감정에 호소하는 해묵은 정치행태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 그 결과는 이제 막 성년으로 자라나는 한국 민주주의에 치명적 상처로 남을 조짐이다. 벌써부터 선거당국은 역대 최저 투표율을 예측하고 있다. 중앙선관위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1.9%만이 ‘반드시 투표하겠다’고 답해 적극적 투표의향층이 4년 전 61.5%보다 10% 정도 줄었다. 지난 17대 대선에서의 낮은 투표율도 이번 선거의 투표율 예측을 어둡게 한다. 지금까지의 총선 투표율은 대선에 비해 대부분 10%가량 낮았다. 17대 대선 투표율이 63.0%로 역대 대선 중 최저였으니 이번 총선 투표율 또한 역대 최저인 50%대 초반이 되리라는 전망이 그래서 가능한 것이다. 세대별 투표율 예측을 들여다보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20대 청년층의 투표율이 염려스러울 정도로 낮다. 이번 총선의 20대 투표율 전망은 17대 대선(20대 초반 42.9%, 20대 후반 51.1%)보다 더 어둡다. 이슈와 쟁점이 없는 선거. 그래서 부동층이 넘쳐나고 역대 최저의 투표율이 염려되는 선거. 이번 총선이 ‘중대선거’의 타이틀을 거머쥐기는 여러모로 요원해보인다. 그러나 선거는 선거다. 그것이 한국 민주주의의 정치지형을 바꾸는 ‘중대선거’이든 아니든 정치적 소비자인 우리 유권자들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것이다. 그러므로 현명한 유권자라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을지 모를 이번 총선의 의미를 애써 찾아야 한다. 거대 여당에 대한 견제든 과반 여당을 통한 안정이든 모두 유권자인 우리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우리 정치의 의미 있는 새 지형이 될 것으로 믿어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선거할’ 권리의 유보라는 수동적 불만의 표현이 아니라 선거참여로 자신의 정치적 선호를 적극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유권자 스스로의 손으로 이 볼품없는 선거에 ‘중대선거’의 꼬리표를 달아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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