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헌재-대법원 'RO실체' 엇갈린 판단…"누구말 맞나" 국민 혼란

대법 "범죄 실행 합의 없어… 내란음모 무죄"<br>헌재 "폭력으로 체제 전복 시도… 혐의 인정"<br>법조계 "사법 판단의 신뢰성 손상" 우려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이 22일 오후 재판을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대법원이 지하혁명조직(RO) 실체와 내란음모 혐의를 인정하지 않은 것은 RO의 실체를 증명할 객관적 증거가 부족하고 내란음모를 위한 확정적 합의가 없었다는 판단에서다. 헌법재판소는 결정문에서 RO와 내란음모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RO의 실체와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 판단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을 비롯한 'RO 회합' 참가자들이 함께 북한에 동조해 국가기간시설 파괴 등 폭력수단을 실행하려 했다며 사실상 RO의 존재와 내란음모 혐의를 인정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며 RO의 존재와 내란음모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우선 RO 존재 여부에 관해 대법원은 "검사의 증명이 확신을 갖게 할 정도에 이르지 못한 경우에는 비록 피고인의 주장이나 변명이 모순되거나 석연치 않은 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다만 강령과 목적, 지휘통솔 체계, 조직보위 체계 등을 갖춘 조직의 실체가 존재하고 이 전 의원을 비롯해 회합에 참석한 130여명이 위 조직의 구성원이라는 의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라고 봤다.

그러나 RO의 존재를 제보한 이의 진술을 뒷받침할 객관적 자료가 부족하고 피고인들을 비롯한 이 사건 각 회합 참석자 130여명이 RO 조직에 언제 가입했고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RO가 존재하고 이 사건 각 회합의 참석자들이 지하혁명조직 RO의 구성원이라는 점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는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RO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내란음모 혐의에 관해서는 "음모는 실행의 착수 이전에 2인 이상의 사람 사이에 성립한 범죄실행의 합의로서 합의 자체는 행위로 표출되지 않은 합의 당사자들 사이의 의사표시에 불과한 만큼 실행행위로서의 정형이 없고 따라서 합의의 모습과 구체성의 정도도 매우 다양할 수밖에 없다"고 전제했다.


재판부는 어떤 범죄를 실행하기로 막연하게 합의한 경우나 특정한 범죄와 관련해 단순히 의견을 교환한 경우까지 모두 범죄실행의 합의가 있는 것으로 봐 음모죄가 성립한다고 한다면 음모죄의 성립범위는 지나치게 확대돼 국민의 기본권인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거나 그 본질이 침해될 수 있는 점을 감안해 내란음모죄의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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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내란음모가 성립했다고 하기 위해서는 개별 범죄행위에 관한 세부적인 합의가 있을 필요는 없으나 공격의 대상과 목표가 설정돼 있고 그 밖의 실행계획에 있어 주요 사항의 윤곽을 공통적으로 인식할 정도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단순히 내란에 관한 생각이나 이론을 논의한 것으로는 부족하고 실행행위로 나갈 수 있다는 확정적인 합의가 있어야 하고 합의에 실질적인 위험성이 있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대법원에 따르면 이 전 의원 등 RO 회합 참석자들이 조직 차원에서 내란을 사전 모의하거나 이를 위한 준비행위를 인정할 증거가 없고 회합 이후 국가기간시설 파괴 등 폭력적 방안을 실행하기 위한 추가 논의를 한 적도 없었다. 결국 재판부는 내란음모를 위한 확정적 합의가 없었고 이로 인해 구체적 위험성이 존재하지 않는 만큼 내란음모죄를 적용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을 비롯한 이 사건 각 회합 참석자들이 이 전 의원의 발언에 호응해 국가기간시설 파괴 등을 논의하기는 했으나 내란의 실행행위로 나아가겠다는 확정적 의사의 합치에 이르렀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이 전 의원을 포함한 이 사건 각 회합 참석자들이 형법상 내란음모죄의 성립에 필요한 '내란범죄 실행의 합의'를 했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헌재는 이 전 의원의 사건만이 아닌 통진당이 해온 그간의 활동을 전반적으로 고려해 해산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이 전 의원의 사건뿐 아니라 비례대표 부정경선, 중앙위원회 폭력사태 등도 함께 고려했을 때 통진당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반한다고 봤고, 특히 통진당이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했다고 판단했다.

이처럼 대법원이 헌재와 다른 판단을 내리면서 법조계 일각에서는 대법원과 헌재의 다른 의견이 사법판단의 신뢰성에 손상을 초래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법원은 형사소송법에 따라, 헌재는 민사소송법에 따라 판단을 내린 만큼 법리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다"면서도 "이처럼 대법원과 헌재가 다른 판단을 할 경우 사법판단의 신뢰성에 손상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국민의 입장에서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이 같은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헌재법을 바꿔 정당해산을 형소법에 따라 하도록 해야 할 필요가 있으며 무엇보다 대법과 헌재 양 기관이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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