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삼성 신경영 20년] <3·끝> 멈추지 않는 신경영

"안주하면 추락" … 끊임없는 혁신으로 퍼스트무버 굳힌다<br>태양전지·LED·의료기기 등 5대 신수종사업 23조 투자<br>인문계 SW개발자 육성 등 통섭형 인재 확보에도 앞장


지난 4월6일 오후 김포공항 국제선 청사 입국장.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 속에서도 입국장은 수십 명의 취재진과 이를 구경하는 인파로 북새통을 이뤘다. 잠시 후 이건희 삼성 회장이 85일간의 오랜 해외체류를 마치고 모습을 드러내자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카메라 앞에 선 이 회장은 올해로 ‘신경영 20주년’을 맞은 소감을 결연하게 말했다.


“20년이 됐다고 안심해서는 안 되고 항상 위기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더 열심히 뛰고 사물을 깊게 보고 멀리 보며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이 회장 특유의 강한 의지와 절박함이 전해졌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지금 당장은 삼성이 세계 일류기업으로 추앙 받고 있지만 언제라도 한순간에 추락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강조한 것이었다”고 이 회장의 발언 배경을 설명했다.

특히 이 회장의 ‘깊게 멀리 보며 연구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지금의 초일류기업을 넘어 100년, 200년의 역사를 이어가는 기업이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혁신해야 한다는 비전이 담겨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 회장의 발언은 당장 1~2년 뒤의 미래가 아닌 삼성이 향후 100년, 200년을 영속할 수 있는 기업으로 성장하려면 먼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길러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읽힌다”고 말했다.

이 회장의 신경영 선언 뒤 20년간 삼성의 목표가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로서 글로벌 초일류기업의 반열에 올라서는 것이었다면 앞으로 놓여진 신경영의 목표는 시장을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서의 자리를 지키는 동시에 지속 가능한 기업을 위한 미래 먹거리를 찾아내는 것인 셈이다.

◇100년 뒤 미래를 위한 씨앗 뿌린다=이 회장은 일찌감치 일본의 ‘히노키나무’에 빗대 미래 신사업 발굴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1년에 겨우 25㎝밖에 자라지 않는 히노키나무는 다 자라려면 100년이 걸립니다. 하지만 오랜 기다림의 시간은 그만한 값어치를 합니다. 똑같이 100년을 키워도 다른 정원수는 기껏 몇 백만원인데 히노키는 2억~3억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한 그루의 나무를 심을 때도 어떤 나무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나듯 기업도 히노키와 같은 고부가가치형 사업을 발굴해야 합니다.”


이 회장은 오랜 고민 끝에 ‘반도체’와 ‘휴대폰’이라는 히노키나무를 선택했고 삼성은 과감한 투자와 주도면밀한 사업전략으로 경쟁자들을 제치고 세계 1위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이 회장의 고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10년 경영에 복귀한 이 회장은 “글로벌 일류기업이 무너지듯 삼성도 어찌될지 모른다. 10년 안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이 사라질 수도 있다”면서 다시 한번 위기감을 불러일으켰다. 더욱이 오늘날의 삼성을 가능케 한 휴대폰 사업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는 또 다른 부담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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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장의 고민은 ▦태양전지 ▦자동차용 전지 ▦발광다이오드(LED) ▦바이오제약 ▦의료기기 등으로 대표되는 ‘5대 신수종 사업’의 추진으로 이어지고 있다. 삼성의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신성장동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당장 100년 기업의 운명조차 장담할 수 없다는 이 회장의 위기의식이 반영된 결과다. 삼성은 이를 위해 2020년까지 총 23조3,000억원을 투자해 이들 5대 신수종 사업 분야에서만 50조원의 매출을 올린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삼성이 초음파 진단기기, 체외 진단기기, 디지털 엑스레이에 더해 CT 등 진단 의료기기 풀 라인업을 구축하고, 신수종사업인 의료기기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래를 향한 변화와 혁신은 아직 진행형=3월 삼성은 인문계 전공자를 뽑아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육성하는 내용의 ‘삼성 컨버전스 소프트웨어 아카데미(SCSA)’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인문학적 소양과 기술에 대한 이해를 두루 갖춘 이른바 ‘통섭형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인문계 전공 입사자들은 6개월간 960시간의 교육을 받은 뒤 정식 소프트웨어 전문가로 채용된다. 교육시간을 모두 환산하면 실제 4년제 대학에서 소프트웨어를 전공한 학생보다 1.2배나 많은 셈이다.

삼성의 이 같은 시도는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인재를 바라보는 기업의 눈도 새롭게 혁신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감성에 기반한 인간 중심의 기술이 중요해지는 미래사회에서는 통섭형 인재의 확보가 기업의 성패를 가를 것으로 전망된다.

‘혁신의 귀재’로 불리던 애플의 창업주 스티브 잡스도 이공계 출신이 아닌 인문학도였다. 그가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앞세운 ‘스마트 혁명’을 일으키면서 첨단기술뿐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재 확보가 기업들의 새로운 과제가 되고 있다. 결국 시대의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삼성의 채용문화 역시 인재를 중시하는 신경영의 또 다른 유산으로 평가된다.

디자인에 대한 끊임없는 혁신도 삼성을 이끌어갈 원동력으로 손꼽힌다. 이 회장은 과거 “소니나 벤츠는 멀리서 봐도 바로 알 수 있지만 삼성은 모방만 하다 보니 삼성만의 아이덴티티가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신경영 선언 3년 뒤인 1996년 이 회장은 “디자인은 기업의 철학과 문화를 담아야 한다”며 ‘디자인 혁명’을 주창했다. 그해 삼성디자인학교(SADI)가 세워졌고 2001년에는 최고경영자(CEO) 직속의 디자인경영센터가 설립됐다. 당시 다른 기업들이 원가절감과 품질에만 매달릴 때 디자인 경영을 내세운 것은 파격 그 자체였다.

디자인에 대한 이 회장의 고집은 오늘날 하나 둘씩 결실로 이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세계 3대 디자인상 중 하나인 ‘iF 디자인 어워드’에서 출품업체 가운데 가장 많은 44개 상을 휩쓸었다. 최근 3년간 수상성적을 종합한 ‘iF 랭킹’에서도 삼성은 애플과 소니ㆍBMW 등을 모두 제치고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삼성은 아직 만족스럽지 못하다. 지난달 29일 열린 삼성전자 디자인 전략회의에서 논의된 화두는 여전히 ‘삼성만의 정체성을 나타낼 수 있는 디자인을 만들자’였다. 이처럼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혁신을 부르짖는 고집이야말로 삼성을 초일류기업을 넘어 100년, 200년 기업으로 만들어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김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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