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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수입차 시장을 호령하던 BMW코리아의 아성이 흔들리고 있다. 막대한 수익 창출원이었던 '5시리즈'와 '3시리즈'가 예전만한 기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이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폭스바겐코리아 등은 거센 추격의 닻을 올리면서 BMW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해의 끝자락이 성큼 다가온 가운데 BMW가 올해는 브랜드의 자존심이나 다름 없는 베스트셀링카 배출에도 실패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서는 BMW가 부동의 1위 브랜드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제품 경쟁력과 마케팅 전략 등 경영 전반에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30일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1~11월 BMW코리아는 국내 시장에서 3만3,617대를 팔았다. 2위인 메르세데스벤츠와는 불과 3,510대 차이다. BMW의 힘겨운 1위 수성이 예상되지만 지난해 두 회사의 판매량 차이가 1만대 가까운 수준이었음을 감안하면 상당히 격차가 좁혀진 셈이다. 바로 뒤를 잇는 폭스바겐도 올해 2만5,000대 이상을 팔며 무섭게 치고 올라오고 있다.
위기 징후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 동안 BMW의 거침 없는 실적 상승을 이끌던 '520d'는 현재 베스트셀링카 순위에서 폭스바겐 '티구안 2.0'과 메르세데스벤츠 'E 220 CDI'에 밀려 3위로 밀려 났다. 연간기준으로 BMW의 5시리즈가 지난 2007년 이후 3위로 밀려난 적은 없다.
'강남 쏘나타'라는 애칭이 최근 젊은 고객에게는 오히려 식상한 이미지로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 판매량 감소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3시리즈의 경우는 아예 10위권 밖으로 밀려나기도 했다.
"새로 출시된 520d의 4륜구동 모델이 소비자들의 호응으로 3,000대 이상 팔리면서 기존 모델의 판매량이 다소 줄었을 뿐"이라는 게 회사의 설명이지만 브랜드 파워의 상징과도 같은 베스트셀링카를 빼앗긴 것은 회사로서는 뼈 아픈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전까지만 해도 수입차 업계의 경우 메르세데스벤츠는 대형차, BMW는 중형차, 폭스바겐은 소형차 분야에서 각각 강세를 보여 왔다.
하지만 수입차 대중화 바람이 불면서 메르세데스벤츠와 폭스바겐은 자사가 최고라고 자부하는 세그먼트(차급) 이외의 분야에서 인기 모델을 발굴하기 시작했다.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을 발 빠르게 예측한 뒤 일종의 '플랜 B' 전략을 가동한 셈이다.
이 전략이 성공적으로 먹혀 든 대표적인 사례가 메르세데스벤츠의 'C클래스'와 'E클래스', 폭스바겐의 '파사트'와 '티구안' 등이다.
이처럼 경쟁 브랜드가 착실히 '캐시카우'를 늘려가는 사이 BMW는 내실 다지기보다는 규모 확장 등의 외형적인 마케팅에 집중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지난 8월 인천에 개장한 복합문화공간인 BMW드라이빙센터다. 이 센터는 2020년까지 총 770억원이 투입되는 회사의 특급 프로젝트다.
다양한 체험시설을 갖춘 번듯한 '자동차 마을'이 국내에도 생겼다는 점에서 지대한 관심을 불러 모았으나 방문객 숫자는 애초의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실정이다.
개장 행사 당시 BMW가 공개적으로 밝힌 목표 수치는 연간 20만명이었다. 하지만 석 달이 지난 현재 방문객은 2만9,290여명에 머물고 있다. 이 추세를 이어가면 목표의 절반 가량만 간신히 달성할 가능성이 크다.
자동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주력 차종이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하는데도 알짜 모델 발굴보다 '이미지 메이킹'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현재 BMW가 위기에 직면한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마케팅 전략의 변화를 통한 수익 모델 개발과 함께 가격 경쟁력 확보 역시 BMW가 재도약을 위해 신경 써야 할 부분으로 꼽힌다.
BMW의 '1시리즈'는 폭스바겐의 '골프'와 비슷한 차급이지만 가격은 1,000만원 가량 비싸다. 올해 베스트셀링카 등극이 확실시되는 폭스바겐의 티구안도 3,840만원에 가장 저렴한 모델을 살 수 있지만 같은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BMW의 'X3'는 최저가 모델도 무려 6,690만원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