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0월23일] 아페르


[오늘의 경제소사/10월23일] 아페르 권홍우 편집위원 나폴레옹의 군대는 바빴다. 전선이 넓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등 유럽은 물론 이집트 원정까지 치르는 동안 최대 고민은 식료품 보급. 신선한 음식을 공급받지 못한 병사들은 영양실조나 괴혈병으로 죽어갔다. 나폴레옹 자신이 쫄쫄 굶다 겨우 생환한 적도 있다. 쿠데타로 1800년 집권한 나폴레옹이 가장 먼저 내건 포고문 중 하나가 음식물 저장방법에 대한 현상 공모였다. 수많은 과학자와 식당업자들이 응모했지만 대상을 차지한 주인공은 니콜라스 아페르(Nicolas Appert). 샴페인병 제조업자였다. 1752년 10월23일, 파리 근교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아페르는 어려서부터 제과점 견습공으로 일하며 음식물 염장보관과 양조를 배우며 자랐다. 소규모 양조업으로 독립한 후 독자적으로 식품의 장기보관을 모색하던 중 나폴레옹의 현상공모을 보고 연구에 박차를 가해 병조림을 발명해냈다. 주둥이가 큰 병 속에 익힌 음식물을 넣은 후 공기를 빼내고 촛농과 코르크마개로 밀봉하는 병조림으로 아페르는 현상금 1만2,000프랑을 받아 대량 생산 공장을 세웠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병조림으로 식량문제를 해결한 이후 나폴레옹군이 거둔 성적이 좋지 않았다는 점. 대신 병조림은 라이벌인 영국으로 건너가 통조림으로 발전한다. 강철을 거쳐 주석 통조림이 나오면서 인류는 식품의 장기보관 고민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가장 반긴 것은 뱃사람들이었다. 통조림이 본격적으로 퍼진 것은 미국 남북전쟁. 연간 1,000만캔씩 뿌려졌다. 요즘도 전세계에서 소비되는 연간 1,000억개 통조림 중 약 20%는 미국에서 제작된다. 아페르의 병조림은 통조림에 자리를 내줬지만 최근에는 가정에서도 손쉽고 깨끗하게 제작이 가능한 웰빙식으로 각광받고 있다. 입력시간 : 2006/10/22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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