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산책/3월 20일]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문화적 감동

우리에게 잘 알려진 클래식 명곡 베토벤의 심포니 5번을 처음 들은 프랑스의 저명한 작곡가 르쥐에르는 소감을 묻는 제자에게 "굉장하군, 음악이 끝나고 모자를 쓰려고 하는데 머리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였어"라고 실토했다.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도 처음 이 곡을 들을 때는 충격적인 감동을 받는다. 베토벤 스스로도 이 곡의 하이라이트인 시작 부분을 두고 "운명은 이처럼 문을 두드린다"는 말을 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이 곡은 운명 교향곡으로 더 잘 알려졌다. 사람들의 인생을 좌우하는 거대한 갈림길의 순간도 때로는 어느 한 찰나의 위대한 영감과 감동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여고시절 성악과 첫 만남 음악인이나 화가, 기타 예술 분야는 물론 치열한 산업 전선에서 활동하는 사람들도 비슷한 경험을 많이 한다. 그들이 전공이나 인생의 진로를 선택할 때 예술작품에서 오는 감동이나 위인들의 이야기에서 받은 임팩트가 깊은 영향을 끼치고 일생을 살아가는 영감의 원천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어린 시절 다양한 문화예술을 향유할 기회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필자가 인생의 진로를 정하는 중요한 순간도 베토벤 심포니 5번 운명 교향곡이 시작하는 몇 분처럼 강력하게 문을 두드렸다. 여고 시절이었다. 삼삼오오 모여 노래 부르기를 즐긴 필자와 몇몇 친구들이 어느 날 처음으로 지휘자를 모시고 정식 연습을 하기로 했다. 마침내 첫 레슨 날, 한참을 기다린 끝에 레슨장 문이 열리고 오리털 점퍼 옷깃을 턱 밑까지 세워 여미고 마스크에 목도리까지 두른 지휘자 선생님이 한 손에 서너권의 악보를 들고 들어오셨다. 지휘자 선생님은 이제 갓 음대 성악과에 입학해 음악을 시작한, 지금으로 보면 신출내기 음악 학도였다. 선생님은 성악을 시작한 계기가 된 일 등 이런 저런 이야기로 레슨을 시작했다. 그러던 선생님이 갑자기 성악적 발성으로 노래를 한 소절씩 불렀다. 이야기를 하는 중에 불과 한두 마디 샘플로 그냥 들려준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우리 인생은 새로운 빛과 아름다움으로 가득 찼다. 소리는 짧은 순간 천장을 타고 흘러와 내 귀를 뚫고 심장을 온통 두근거리게 하며 내 영혼에 깊이 새겨진 것이다. 필자는 지금도 그때 충격으로 다가왔던 감동을 단 한순간도 잊지 않고 오히려 크고 아름답게 가꿔가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동안 음대 4년을 거쳐 10년의 유학생활을 한 후 귀국해 수많은 공연을 하고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됐고 또 결혼해서 한 남자의 아내가 되고 아이의 엄마가 됐다. 사람 냄새 나는 음악 하고파 그러는 동안 내 노래와 함께 때로는 좌절하고 때로는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끼며 여러 모양으로 쪼개지고 다듬어지고 깨지고 성숙해졌다. 또 엄마가 되면서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사랑을 하며 더욱 다듬어졌고 더불어 음악에 대한 생각도 바뀌고, 바뀌고 또 바뀌었다. 20년 넘게 함께한 노래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는 통로가 됐고 노래가 곧 인생이고 인생이 곧 노래였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다듬어지고 성숙해지기를 원한다. 더욱 겸손하며 많은 사랑을 주고 해가 갈수록 따뜻한 사람 냄새가 솔솔 나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그런 음악을 하는 성악가이고 싶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필자의 인생에 마르지 않는 샘물로 자리 잡아 삶을 아름답게 가꿔준 소중한 음악을 많은 사람에게 선물하고 싶다. 특히 청년들에게 때로는 위로로, 때로는 용기로 끊임없이 솟아나는 샘물이 되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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