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차이나 리포트] 줄잇는 언론 공개심판 생방송에 링다오들 바늘방석

농민가옥 불법 철거 의혹 등 비밀취재 동영상 보여준 후<br>방청객 질의에 해명 '땀뻘뻘'<br>지난달 우한서 시작한 후로 칭다오·뤄양 등 中전역 확산

중국 링다오(지도자)들이 줄줄이 언론의 심판대에 서고 있다. 성 및 시정부의 부서기 등 고위 링다오들이 현지 TV 방송국의 생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실정(失政)과 정부 부패에 대한 인민의 공개 추궁을 받고 있는 것. 중앙 및 지방 정부 부처는 물론이고 사법, 입법부 등 모든 국가 조직을 공산당 일당이 장악하고 있는 중국에서 당의 고위 링다오와 당이 임명한 정부 인사를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수단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같은 상황에서 중국 언론 역사상 처음으로 고위 당 지도자 및 정부 인사를 불러 정부 부패와 비리를 폭로하고 인민의 공개 질의를 받도록 하는 것은 중국 사회에 신선한 청량제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 유력 주간지인 경제관찰보는 최신호에서 지난달 후베이성 우한의 지역 방송국에서 시작된 정부 고발 프로그램이 허난성의 뤄양, 산동성의 칭다오 등 여타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며 이같은 언론의 감시 운동이 깨끗하고 투명한 정부 조성의 새 바람을 불러일으킬 지 주목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들 프로그램이 중국 인민의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은 사전 각본없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통상 링다오들이 언론 인터뷰에 나올 때면 사전에 질문을 통보받고 미리 준비했던 답변을 상투적으로 내놓는 것이 관례다. 하지만 이번 고발 프로그램은 최소 수개월간의 비밀 탐사 취재를 통해 만든 정부 관료 부패, 실정을 담은 동영상을 현장에서 링다오에 보여준 후 이를 토대로 객석의 질문이 이어지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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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4일 우한의 진저우 방송국에서는 후베이성 고위 링다오를 불러놓고 '농업, 농촌, 농부'라는 주제로 사전에 준비된 비밀 탐사 취재 동영상이 공개됐다. 성단위 고위 관료가 TV 생방송 고발 프로그램에 처음으로 출연한 것이다. 현장에 나왔던 관료들은 당국의 농민 가옥 불법 철거 의혹 등을 담은 동영상에 당황해 하는 표정이 역력했고 그 자리에서 문제 해결을 약속하기도 했다.

처옌까오 우한시 당 기율위원회 서기는 "이번 우한 프로그램은 시작에 불과하다"며 "인민들이 상시적으로 정부와 소통할 수 있는 기제를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우한 프로그램이 방영된 이후 후베이성의 또 다른 도시인 황슈도 부시장 등 6명의 관료를 불러 놓고 환경 오염 쓰레기 무단 폐기 문제에서부터 인민의 교통 흐름을 방해하는 고압적인 교통 관제 등의 문제가 집중 폭로됐다. 또 후베이성의 샹양시 방송국도 부시장과 시 산하 공공 병원장을 불러 의료계 비리 사슬 구조을 질타했고 이에 대한 개혁을 촉구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이들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허난성의 뤄양, 산동성의 칭다오 등 여타 성ㆍ시의 방송국도 유사 프로그램을 잇달아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프로그램에서 링다오들이 약속한 부패 진상 조사 및 처벌, 시정 조치가 사후에 제대로 이행되는지 보장할 기제가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후베이성 당 기율위원회는 사후 조치 이행을 점검하기 위해 지난 8월 초 성 통계국과 공동으로 '반 부패 공공조사 센터'를 설립했지만 이 조직 자체가 성 정부 산하에 놓여 있어 독립적인 감시 활동을 펼칠 수 있을 지가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공산당으로부터의 독립은 고사하고 정부로부터 자유로운 제 3의 독립기구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마저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이들 고발 프로그램이 계속해서 번창, 발전할 수 있을 지도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무엇보다 자신의 책임 추궁이 두려워 링다오들이 출연 자체를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을 언론의 공개 심판대로 유도할 법적, 제도적 장치가 없는 것이다. 자신보다 상위의 고위 링다오들의 강압에 못 이겨 억지춘향격으로 언론에 나서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병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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