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기업의 엄살 그리고 오해

국민연금 의결권 강화 기업 위한 일

주주권 행사까지 적극 검토해야

한기석 증권부장

지난달 28일 보건복지부는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를 열어 개정된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지침을 의결했다. 국민연금이 투자한 기업에서 10년 초과 장기 재직한 사외이사와 출석률이 75% 이하인 사외이사의 연임에 반대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재계는 즉각 우려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국민연금이 반대하는 대부분의 이사 선임은 반기업 정서에 근거합니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강화는 기업 경영을 위축시킬 수 있습니다. 연금 사회주의는 안 됩니다."


재계의 우려는 국민연금 의결권 강화 얘기가 나올 때마다 반복됐다. MB 정부 때인 지난 2011년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이 주장했을 때도 재계는 반발했고 논의는 유야무야됐다.

국민연금 의결권 강화는 맞는 방향이다. 돈 맡겨놓은 국민 입장에서 보면 보유지분만큼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당연하다. 의결권 행사의 내용도 따져보면 지극히 상식 수준이다. 국민연금이 반대하는 이사는 그 기업에 10년 넘게 재직한 '직업이 사외이사'인 사람이다. 오너와 학연·지연 등으로 엮이거나 수십년 근무해 그 회사의 분신이 된 사람이 기업 경영에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거수기 역할을 하는 것은 바꿔야 한다. 수천만원의 연봉을 받으면서 이사회에 자꾸 빠지는 사람도 큰 문제다.

이번 기금운용위원회는 원래 횡령·배임행위가 명백한 임원에 대한 반대의결권 행사도 의결할 예정이었지만 재계의 반발을 염려한 탓인지 5월로 논의를 연기했다. 회삿돈을 빼돌리고 회사에 손해를 입힌 임원에 대해서는 재계도 보호할 논리가 부족했던 모양이다.


1심 판결 이후 판단을 내리는 건 성급하며 최종 판결 때까지 기다리는 게 맞다는 선에서 입장을 정리했다. 잘못됐다. 최종 판결 때까지 몇년은 족히 걸린다. 그 사이 회사는 부도덕한 임원의 경영으로 더 큰 손해를 입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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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의결된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지침은 사실 이렇게 정색을 하고 얘기할 수준이 못된다. 다 인정할만한 내용이란 걸 누구나 안다. 그럼 재계의 이 오래됐지만 새삼스러운 반응은 뭔가.

말은 이렇게 하지만 생각은 저렇게 하는 경우가 많다. 국민연금 의결권 강화에 대한 재계의 입장이 그렇다. 정작 속에 있는 생각을 들어보면 이 정도 수준의 의결권 강화는 당연하다. 다만 사회 분위기가 이런 쪽으로 급변해 진짜로 기업 경영을 위축시킬 조치가 나올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이가 시리지 않으려면 입술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판단에 엄살을 부리는 것이다.

이해는 하지만 가만 따져보면 오해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강화는 기업 경영을 위축시키는 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확장한다. 회삿돈을 빼돌리고 회사에 손해를 입힌 사람을 경영에서 배제하면 그만큼이 이익으로 돌아오지 않겠는가. 손해를 끼치는지 여부를 누가 어떻게 판단하냐고 물으면 안 된다. 도돌이표다.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지침에 나와 있다.

의결권 강화에서 더 나아가 주주권을 행사하는 데까지 논의를 확장해야 한다.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행사해도 그뿐 뜻을 이루지 못한 경우를 최근만도 주주총회에서 봤다. 국민연금은 이걸로 끝냈다. "할 만큼 했는데 능력(지분)이 부족해 어쩔 수 없었다"는 할리우드 액션으로 읽힌다. 상법은 이런 경우에 대비해 이사해임을 법원에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사해임청구권의 남용도 염려할 필요가 없다. 부정행위 또는 법령·정관 위반행위로 엄격히 제한된다.

21일은 662개 상장사가 주총을 여는 슈퍼주총일이다. 이 중에는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대상인 기업도 여럿 있다. 국민연금이 얘기하기 전에 기업이 앞장서 거수기 사외이사와 횡령·배임 임원의 연임을 무효화하면 어떨까.

/한기석 증권부장 hanks@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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