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지도 위에 되살린 역사의 현장

조르주 뒤비 지음, 생각의 나무 펴냄<br>지도 520장 통해 역사의 파편 재구성<br>서구 중심 벗어나 아프리카등도 다뤄


모든 길이 과연 로마로 통할까. 그렇다. 신간 '조르주 뒤비의 지도로 보는 세계사'를 보면 한눈에 들어온다. 건국 초기부터 거대제국을 이룰 때까지 로마와 속주들의 도로망 건설이 일목요연하게 표시돼 있다. 로마가 도로건설에 매진한 이유도 설명으로 따라붙는다. 막연한 지식, 암기로 머리 속에 구겨넣었던 역사의 파편을 입체적으로 재구성시켜주는 책이다. 책의 핵심은 520장에 이르는 지도. 칼라판으로 인쇄된 각종 지도를 통해 역사의 현장이 되살아난다. 왜 지도일까. 저자 조르주 뒤비의 설명을 들어보자. '역사는 땅에 남는다. 인간이 지나간 모든 흔적은 땅에 남았다. 문명사를 살펴보려면 다양한 지도를 도움을 받아야 한다. 지도는 역사를 잘 나타낼 뿐 아니라 그 차제로 역사를 서술하는 테스트며 사건을 분석한 글을 분명하게 뒷받침해준다.' 지도 뿐 아니라 그림과 사진 78컷도 이해를 도와준다. 절반을 차지하는 시각물의 나머지는 설명으로 채워져 있다. 곳곳에 심층해설까지 더해진 설명의 깊이는 보통을 넘는다. 각 시대별, 지역별 전문가 90여명이 편집을 맡은 덕분이다. 1978년 초판 발행 이래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역사부도로 꼽히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2002년 프랑스어판을 번역한 한국어판도 각계 전문가들이 4년을 매달린 끝에 나왔다. 대표 편집을 맡은 조르주 뒤비는 유럽 최고의 중세사 권위자. 20세기 역사학의 신조류로 정치보다는 사회상, 개인보다는 집단, 연대기보다는 사회적 구조에 대한 규명을 역사인식의 기본골격으로 삼아야 한다는 아날학파의 대표적인 학자다. 1996년 사망할 때까지 314편의 저술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국내에도 '프랑스 문명사', '여성의 역사' 등 10여편이 넘는 번역서가 나와 있다. 책은 묵직하다. 타블로이드 신문만한 크기의 대형판이어서 일반판형 3~4권 분량을 족히 넘는다. 책을 펼치면 넓은 지면에 역사의 장면이 꿈틀거리며 뛰어나오는 느낌을 받는다. 336쪽에 이르는 전체 분량중 서유럽이 187쪽을 차지하고 있지만 여느 역사서와 달리 일방적 서구문명 중심에서 벗어나 있다. 유럽의 변방과 아프리카 등 쉽게 접할 수 없는 지역의 역사도 포함하고 있어 해당 지역 진출을 희망하는 기업인들에게도 도움이 될 만 하다. 다만 한국이 중심인 지도는 달랑 4장, 그 것도 한국전쟁과 핵 위기 등 어두운 면이라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책은 역사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는 자극제이자 조각으로 흩어진 단편적 지식을 치밀하게 짜주는 직조기 격이다. 책을 안읽는 인문학의 위기 풍토와 12만원이라는 가격에도 인터넷 사전 주문에 1,300여부가 몰렸다는 점은 '대물림할 만한 양서'에 대한 기대감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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