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북한에서 날아온 '검은 백조'


지난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할 때만 해도 세계경제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대다수 전문가들은 예상했다. 미국 정부조차도 덩치가 크기는 하지만 파산시켜도 별 일이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리먼 파산은 전혀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리먼 부실이 복잡한 금융파생 상품이라는 핏줄을 타고 수십배로 증폭됐기 때문이다. 골디락스(물가상승 없는 호황)를 구가하던 세계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졌고 그 파장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후 리먼 사태는 과거의 경험으로는 예측할 수 없는 영역에서 발생해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온 '블랙스완(검은 백조)'이라는 분석이 나왔고 블랙스완은 이제 경제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이 됐다. 한반도를 혼란으로 몰아넣고 있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이 한국 경제에 블랙스완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노무라증권은 김정일 사망이 일시적이나마 한국 증시에 블랙스완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평가를 내놓았고 HSBC는 한국 경제에 시기적으로 불행한 사건이라고 진단했다. 그 요지는 이렇다. 유럽 재정위기로 경제가 냉각되고 있는 상태에서 김정일까지 사망해 지난 수십년간 코리아디스카운트를 만들어 온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부각되게 됐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엎친 데 덮쳤다는 얘기다. 이로 인해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면 수출, 기업신뢰도, 소비자 심리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이것은 결국 투자와 소비둔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정일 사망으로 경제불안 가중 이들의 분석처럼 김정일의 사망은 분명 한국 경제에 악재임이 틀림없다. 37년간 북한을 철권 통치해온 독재자 김정일이 죽었다는 소식이 희망보다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김정일 사망으로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가중된 게 사실이다. 일각에서는 김정은 후계체제 전환과정에서 북한 정치체제가 불안정해지고 대규모 탈북 사태 조짐이 나타날 경우 천문학적인 통일비용까지 떠안을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또 20년 동안 차근차근 권력을 장악한 김정일과 달리 김정은이 권력이양 초기단계여서 체제강화를 위해 군사적인 행동에 나설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래저래 불안하기만 한 상황이다. 그러나 정확히 보면 김정일 사망은 결코 블랙스완이 아니다. 전혀 예측하지 못한 사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교수는 저서 '위기의 경제학'에서 현재의 위기는 블랙스완이 아니라 '화이트 스완(하얀 백조)'이라고 반박한다. 역사적으로 되풀이돼온 위기라는 것이다. 그 위기는 충분히 예측할 수 있고 예방도 가능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다만 지금까지 위기가 반복되는 것은 제때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정일의 사망도 이미 예견된 사안이었다. 포브스지는 지난해 "김정일이 2011년 사망하고 김정은이 29세의 나이로 권력을 승계한다"고 예측했고 지난해 2월 방한한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3년 내 김정일이 사망할 것으로 내다봤다. 우리 정부도 이에 대한 대응책을 갖춰 놓았을 것이라 믿는다. 블랙스완 아닌 예고된 시련 문제는 그 대응체제가 얼마나 정밀하고 완벽하냐는 것이다. 김정일 사망에 북한의 공식발표가 나오기 전까지 사망 후 52시간 동안 김정일 사망과 관련한 어떤 낌새도 파악하지 못한 실수가 더 이상 반복돼서는 안 된다. 지금부터가 바로 그 시험대다. 남북 화해 무드가 조성되고 경협이 확대되면 김정일 사망은 오히려 호재가 될 수 있다. 김정일 사망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정부는 각 부처를 비상근무체제로 전환하면서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니 국민들은 이를 믿고 아무런 동요 없이 경제활동에 전념하라는 것이다. 그 대비에는 한치의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김정일 사망 악재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 김정일 사망은 우리 경제에 블랙스완이 아니라 반드시 넘어서야 할 예고된 시련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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