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금융감독 정책의 불투명성

요즘 외환은행 매각을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다. 지난 2003년 당시 누가, 무슨 근거로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는지를 밝히기 위해 감사원과 검찰이 최근 팔을 걷어붙였다. 당시 결정 및 절차의 정당성 여부는 이들 기관의 조사를 통해 밝혀지겠지만 그 정당성 여부를 떠나 우리가 이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한국의 관료들이 굵직굵직한 감독정책을 종종 불투명한 과정을 거쳐 결정한다는 사실이다. 정부 개입이 의혹 낳아 원론적으로 따져보자. 쇼펜하우어는 “모든 예술은 음악의 상태를 동경한다”고 말했다. 이와 비슷하게 “모든 정책 결정은 정치의 상태를 동경한다”고 말할 수 있다. 정부의 어떤 정책 결정도 정치로 통한다. 민주사회에서 국민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어떤 의사 결정도 유권자에 대한 고려에서 유리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정책 결정이 반드시 국민을 위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민주정부는 주기적으로 선거를 치른다. 차기 선거에서 이기려면 가시적 성과를 내야 하므로 정부의 시야가 단기화된다. 이런 정부가 통화ㆍ금융 분야에서 일을 잘하기는 어렵다. 통화ㆍ금융은 특히 중장기적으로 정책을 펴야 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통화신용정책과 금융감독정책까지 직접 결정하면 이내 정책 일관성을 상실해 실패하기 쉽다. 오늘날 선진국들은 중앙은행(통화 당국)과 감독 당국이 정부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도록 제도화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정치 과정을 통해 중앙은행과 감독 당국에 고유 책무를 부여하고 각 당국이 전문성을 바탕으로 일관적 정책을 펼칠 수 있도록 독립성을 허용한다. 정책의 결과에 대해 각 당국에 철저히 책임을 지우는 것은 물론이다. 우리나라는 환란 이후 두 차례의 한은법 개정을 통해 한국은행 독립성의 법적 기반을 웬만큼 마련했다. 한은이 명실상부한 독립성을 확보하고 책임을 다할 수 있을지 여부는 이제 그 자신의 역량에 달렸다. 하지만 한국의 금융감독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감독정책의 모든 결정 과정과 배경은 공식 자료 및 회의록을 통해 체계적으로 보존돼야 한다. 그래야 정책의 사후적 투명성을 기할 수 있다. 환은 매각 결정의 경우 그런 자료는 아예 없는 것 같다. 한편 은행 인수합병의 인가는 감독 당국인 금융감독위원회의 소관이다. 그럼에도 론스타로의 매각 가능성을 검토한 2003년 7월 (비밀)회의에 금감위 외에 재정경제부와 청와대의 관료까지 참석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실 한국의 감독정책은 금감위보다 서열과 권한이 앞서는 재경부에 의해 자주 좌우된다. 예컨대 금감위ㆍ금감원은 2001년 5월 카드사 감독 강화를 추진했으나 재경부의 반대로 정확히 일년 동안이나 관련 조치를 취하지 못했던 적이 있었다. 그 사이 카드사 부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은 물론이다. 또 2003년 초 카드 사태 및 2004년 초 LG카드 위기의 처리 과정에도 불투명한 부분이 적지 않다. 민간기구에 의한 감독 절실 재경부는 경제정책을 총괄ㆍ조정하는 입장이라 자연스레 정치에 민감하다. 암만 선의를 가졌다 해도 정치적으로 민감한 재경부가 감독에 개입하면 정책 결정 과정이 불투명해지게 마련이다. 감독 당국인 금감위(관료조직)가 정부(재경부)로부터 일정 거리를 두기란 태생적으로 곤란하다. 정책 결정의 투명성이 확립되지 못한 한국의 관료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공적 민간기구에 의한 감독이 그래서 절실하다. 감사원은 이런 현실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지난 카드 감사 때와 달리 이번 환은 매각 감사에서는 감사원이 헌법기관으로서 공정한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누가 감사원을 감사할 것인가”라는 소리를 다시 들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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