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개에 달하는 납품업체들을 다 만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대형유통사들이 공정거래법상 ‘대규모소매업’고시를 100% 준수하겠다면 그것은 유통업체 스스로 경쟁력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지요.”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대형유통업체들과 중소 납품업체들 간의 불공정거래 관행을 개선하겠다고 칼을 빼들자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볼멘소리로 불만을 터트렸다. 공정위가 지난해 하반기 실태조사를 통해 대형백화점에 제재를 가하고 과징금을 부과한 데 이어 지난달부터 일부 중견 유통업체들을 대상으로 조사에 들어가면서 유통가가 잔뜩 긴장하고 있다.
사실상 공정위 정기조사에서 나오는 불공정 행위들이라는 것이 대형유통업체들의 중소제조업체에 대한 부당한 납품단가 인하요구, 판촉행사 참여강요 등 매년 판박이어서 제재를 받게 되면 ‘우리만 재수가 없었다’는 반응이 대부분인 게 사실이다. 지난해 시정명령을 받은 국내 굴지의 대형백화점은 수억원에 불과한 과징금도 못 내겠다며 이의신청까지 한 상태다.
정부의‘지엄한 처분’을 받아야 하는 유통업체들도 할 말은 많다. 매장(MD) 개편시기에 매출실적이 좋은 제품으로 진용을 갖추자면 잡음이 불가피하고 납품단가를 쌍방협의 하더라도 나중에 불만은 남게 마련이란 것이다. 거래상 우월적 지위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대규모소매업’고시조차 거래사안별로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아 유통업체들도 관행상 불공정거래 문제는 인정하면서도 시정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불공정거래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정부의 관리감독은 지속돼야 한다. 하지만 유통업체와 납품업체 간의 고질적인 불공정 관행의 근본적인 원인을 분석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한 실질적인 개선방안 마련에 정부ㆍ업계가 함께 나서야 할 필요가 있다.
공정위는 업체들 간‘경쟁촉진’을 유도하는데 전력을 다하겠다고 천명하고 있다. 정부는 소비위축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유통업체들의 사정에 귀 기울여 문제를 근본적으로 함께 해결해보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것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는 업계의 불공정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지름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