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심층진단] 1만개 中企IT화 사업 어떻게 돼가나

사업자선정부터 '날림' 용두사미 우려 >>관련기사 정부의 1만개 중소기업 IT(정보기술)화 사업이 겉돌고 있다. 주관 부처인 산업자원부와 중소기업청이 사전준비 부족 상태에서 부랴부랴 사업자 선정을 끝마침으로써 중소기업 정보화라는 거창한 계획이 용두사미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특히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정부가 시장에 대한 식견 없이 공급 가격을 일방적으로 결정함으로써 국내 IT 벤처 기업의 존립기반 자체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아우성이다. 수요자인 중소기업 역시 공급 업체로 선정된 회사의 제품을 믿고 살 수 없는 상황에다 부실 공사의 위험까지 겹쳐 난감해 하고 있다. ◇공급업체 선정기준의 모호함=정부는 지난 3월 '2001년 IT 소프트웨어 보급확대 계획'을 발표하면서 관련 작업을 외견상으로는 순조롭게 진행해왔다. 이 발표 직후 중기청은 180억원의 예산을 확보, 공급업체와 지원 중소기업을 선정하는 등 일사천리로 사업을 운영하는 모습이었다. 특히 정부는 최근 수혜 업체 수를 2003년까지 3만개로 늘리겠다는 방침을 발표하면서 이 사업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강력한 의지를 재천명했다. 하지만 중기청은 공급업체 선정 작업에서부터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1차 서류작업에 투입된 10명 정도의 인원이 단 3일 동안 330여 공급업체의 서류를 심사하는 무성의를 보였다. 이후 이뤄진 2차 기술평가 역시 소프트웨어를 담당자의 PC에 설치하고 관련 기능의 보유 여부만 파악하는 '날림 평가'로 일관했다. 전문가들은 중소기업의 e-비즈니스를 지원할 수 있는 기업자원관리(ERP) 제품의 구비 요건으로 네트워크 가용성과 다른 정보시스템과의 통합성을 꼽고 있다. 하지만 중기청은 이에 대한 검토작업 없이 각 업체가 내놓은 서류에 명기된 기능이 해당 제품에 갖추어져 있느냐의 여부만 평가하는 데 그쳤다. 이에 따라 이번 사업에서 제품을 공급할 수 있는 이른바 'IT 업체풀'에는 관련 업계 종사자들조차 처음 들어봤다는 회사 이름이 수두룩하다. 업계 관계자는 "돈이 된다는 말을 듣고 자사에서 사용하던 시스템을 제품으로 둔갑시키거나 해외에서 소스코드를 사와서 급조한 사례가 많다"고 털어놓았다. ◇저가 경쟁 부추겨=선정 기준의 모호함과 더불어 너무 낮은 공급 가격도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정부는 사업 초기부터 "중소기업 ERP 도입 비용의 50%를 지원하겠다"는 일관된 원칙을 고수했다. 그러면서도 지원 비용의 한도는 2,000만원으로 고정해 놓았다. 이는 시장의 현실을 한참 무시한 결정이다. 외산 고급형 제품을 기준으로 할 때 통상 ERP를 도입하는 데는 소프트웨어 구입 비용만 7,000만원을 호가한다. 국내 제품도 관련 기능을 모두 갖춘 경우에 4,000만원 이상은 돼야 사용 가능하다. 특히 컨설팅이나 하드웨어 구입비 등을 감안할 때 비용은 두배 이상 치솟는다. 매년 소요되는 유지보수 비용이 제품 구입비의 5~10% 정도 된다는 점은 차지하더라도 정부가 제시한 지원자금은 제대로 된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하지만 정부는 '50% 지원'이라는 구호에 계속 집착하고 있으며 이러한 고집은 소프트웨어 가격의 하향평준화라는 결과를 낳았다. 경기 침체로 가뜩이나 목말라 있는 국내 소프트웨어 벤처들은 시장점유율을 유지하기 위해 손해를 보면서라도 제품을 팔아야 하는 실정이다. 이는 곧 알짜 소프트웨어 벤처 기업들의 경영 악화와 국내 IT 산업의 전반적인 질적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날림공사 우려 높아져=날림 공사에 대한 우려감도 갈수록 높아지는 상황이다. 수준에 미달하는 제품이 공급되고 나서 유지보수ㆍ업그레이드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중소기업의 부담만 늘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ERP는 그 자체의 기능보다도 전자상거래나 고객관리(CRM) 등 확장 기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일정 수준은 갖추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정부가 엄격한 공급 업체 선정기준을 만들지 못함으로써 중소기업 e비즈니스 추진에 오히려 장애요인을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의 근시안적 정책 집행으로 수혜업체인 중소기업도 난감해하고 있다. 제품 선택에 있어 판단할 만한 기준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기청은 홈페이지를 통해 공급업체의 제품 리스트와 간단한 소개자료를 제공하고 있어 성의 부족이라는 평가다. ◇수혜업체 냉랭=무엇보다 시끌벅적한 정책 발표에도 불구하고 정작 수혜자인 중소기업들의 반응은 냉랭하다. 중기청은 10여 회에 걸친 지방 설명회까지 개최했지만 아직 국내 중소기업들은 ERP 도입 자체에 대한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않는 상황. 이는 정부가 충분한 수요파악과 사전 홍보작업 없이 일단 터뜨리고 보자는 전시행정을 펼친 결과다. 공급업체 간에 벌어지고 있는 상호비방과 중상모략도 이 사업의 좋은 취지를 흐리게 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중기청이 특정 업체와 결탁해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있는 수혜업체 리스트를 몰래 제공했다는 의혹까지 제기했다. 수혜업체는 공급업체 명단을 제공받지만 공급업체는 수혜업체를 알 수 없도록 한다는 원칙이 깨졌다는 마타도어도 난무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기청은 수혜업체 명단을 완전히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하다 최근 공급업체가 각 지방을 돌며 수혜업체를 대상으로 제품설명회를 개최하는 방안을 마련, 형평성 논란을 가까스로 잠재웠다. ◇중기청 보안대책 마련=이러한 모든 비판에 대해 중기청은 관련 인력의 부족과 업체간 과당경쟁이 빚은 결과라는 입장이다. 현재 각 지방사무소와 중소기업진흥공단 인력을 포함해 총 70명 정도가 이 사업에 매달리고 있지만, 280만개 중소기업과 330여 공급 업체의 모든 요구를 수용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것. 이에 따라 중기청은 이 사업을 민간에 위탁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중이다. 하지만 중기청이 대안으로 제시한 민간위탁이나 산업별 템플릿의 개발 등이 중소기업 정보화 사업의 질적인 향상을 담보할 수 있을지는 아직 두고볼 일이다. 특히 일련의 보안대책 마련으로 자칫 또다른 형평성 논란에 휩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문병도기자 김한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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