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부 포스코 회장이 주총을 하루 앞둔 13일 돌연 사퇴했다. 유 회장은 지난달 18일 포스코 이사회에서 이사로 추천됐고, 절대 다수의 주주들이 유회장의 연임에 찬성의사를 밝힌 상태라 이변이 없는 한 연임될 것으로 예상됐다.
유 회장은 “포스코의 진정한 도약과 발전을 바라는 스스로의 충정에서 결심했으며 차기 경영진이 회사를 더 크게 발전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갖는다”고 사퇴의 변을 밝혔다. 외형상으로는 자진사퇴의 형식을 취한 셈인데 정부가 유회장의 연임에 반대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던 터라 유언ㆍ무언의 압력에 의한 사퇴라고 함이 더 옳을 것이다.
정부가 비록 소수 지분이지만 보유지분을 통해 발언권을 행사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61%의 지분을 갖고 있는 외국인 주주를 포함해 대다수의 민간 주주가 지지하는 경영자를 정부만이 반대하는 것은 어색하다. 정부가 공기업 시절의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비록 포스코가 공기업에서 완전 민영화 했다고는 하지만 정부가 공식적으로 반대입장을 표명한다면 유 회장 뿐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회장직은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정부가 내세운 유 회장 연임 반대 이유도 명확치 않다. 정부는 유 회장이 타이거 풀스 사건과 관련해 재판이 계류 중이라는 점과, 회장제가 `옥상옥`이라는 점을 연임 반대 이유로 제시했는데, 전자는 진행중인 재판에 예단을 갖고 있는 것이고, 후자 역시 유회장의 업무자세로 보아 `옥상옥`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 타당성을 잃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민간기업의 인사에 개입하는 것은 투명경영이나 주주중심 경영과 배치되는 것으로 국내 기업의 대외신인도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 SK그룹의 분식회계사건으로 한국 기업의 신뢰도가 땅에 떨어져 있는데 정부가 앞장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을 제공하는 꼴이다.
정부가 민간기업의 인사에 개입하는 것은 경영을 왜곡시키는 원인도 된다. 임직원들이 능력으로 인정 받기 보다, 줄서기에 신경을 쓰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후임자 선정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다. 철강산업은 국가 기간산업이자 방위산업이고, 또 대규모 투자를 필요로 하는 거대 장치산업이다. 한 순간의 잘못된 투자판단이 회사에 엄청난 손실을 끼친다. 포스코는 지금도 그 같은 투자판단 잘못으로 인한 시련을 겪고 있다. 관료출신이나 정치인 출신을 낙하산인사로 앉혀서는 안 된다. 국내외철강시장을 꿰뚫고 있는 철강전문가를 앉혀야 한다.
아울러 정부는 이번에 중소기업은행이 투자목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지분을 이용해 인사에 개입했는데 앞으로는 보유주식을 매각하던지, 의결권을 제한함으로써 포스코의 완전 민영화 취지를 살려야 할 것이다.
<안길수기자 coolass@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