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송현칼럼] 反기업 정서는 없다

또 반기업 정서 타령이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기업경제가 좀 어려워질 때면 으레 나오는 소리가 ‘반기업 정서’가 문제라는 불평이다. 처음에는 일부 논객을 동원한 “우려스러운 반기업 정서, 성장하는 기업 발목잡지 말라” 정도에서 “사회부패와 부조리가 기업인의 원죄냐”로 비약한다. 이제는 시민단체를 경찰보다 더 무서운 존재라고 규정하고 전경련 회의에서마저 “글로벌 시장에서 크게 성공한 기업을 비난하는 것은 시장경제의 가치와 질서를 훼손하는 것”이라는 위협적인 성명이 나왔다. 어느 시민단체와 노사 대표 연석회의에서 우리나라 유수의 기업 대표는 “우리가 이렇게 많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수출하며 경제성장을 견인하고 있는데 또 무슨 기업의 사회적 책임(공헌)을 하라는 것이냐, 국민들의 반기업 정서가 더 큰 문제”라고 공언한다. 그런데 과문이지만 우리 사회 어느 집단을 둘러봐도 기업 자체를 욕하거나 비난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세계 반도체 시장을 석권한 삼성이 자랑스럽고, 창조적인 기업의 저력을 과시하는 LG가 멋지고, 정보기술(IT) 업계의 총아인 SK텔레콤과 KT가 잘되기를 바란다. 뿐만 아니라 현대ㆍ기아자동차와 포스코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사회적 공헌활동에 찬사와 박수를 보낸다. 글로벌 시장에서 선두를 다투는 우리 대기업들에 응원과 선망을 주저하지 않는다. 문제는 기업주, 사인(私人)들의 행태이다. 현 단계 우리 사회의 시민의식은 대기업 오너이건 공기업인이건 법규를 어기고 범법을 저지르는 것을 무조건 용인할 만큼 어리석지 않다. 심지어 대통령이건 그 아들이건 잘못을 하면 그 대가를 받게 했을 만큼 성숙해 있다. 하물며 비리 기업인의 중대한 탈법ㆍ불법행위를 기업살리기 차원에서 덮어두자는 여론몰이가 통할 리 없다. 그만큼 사회 각 부문의 성공한 노블리스 지도자층에 대한 도덕적 평가의 잣대가 엄정해진 것이다. 이제는 편법으로 재산과 기업을 대물림하고, 탈법으로 비자금을 만들어 사리사욕을 채우며, 탈세와 분식회계로 선의의 주주와 서민들을 눈물짓게 하는 범법 기업인이 설 자리가 점차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이제는 자유시장경제 체제의 보호막 뒤에 숨어 불법을 자행하고도 비리 기업인들이 기업성과를 내세워 범법행위를 변명ㆍ방어하기 어려운 투명사회가 된 것이다. 세상이 밝고 맑아졌는데도 개인이 곧 기업인 양 착각하는 구시대적 발상에서 여태 깨어나지 못하고 가문의 영광과 이익만 추구하다가 기업과 국가마저 멍들게 하는 사람들이 적지않음은 안타깝다. 그들이 최후 도피처요 방호벽으로 내세우는 것이 정치인의 경우 애국심, 반공, 친미, 특정 종교 신앙 등이었고 기업인의 경우 자유시장경제 체제, 일자리, 수출, 경제성장 등이었다. 성숙한 시민사회는 이제 그 자초지종의 공과를 다 알고 있다. 공(功)은 흠모하고 과(過)는 나무랄 줄 아는 평준화된 우리 시민의식은 실정법보다도 더 냉엄한 고도의 윤리수준에 도달해 있다. 청와대 모 수석의 말과는 정반대로 현재 우리 국민들의 시민의식은 선진국 수준인데 정치인과 기업인의 도덕ㆍ윤리의식은 저개발국 수준이다. 다만 우리 사회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아직도 분단 상태의 냉전논리가 살아 움직이고 있어 까딱하면 좌파ㆍ우파로 가르고 획일적인 시장경제주의와 반시장경제로 대립시켜 교묘히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무리가 있다. 자본주의 선진국인 미국과 유럽국가들에는 이미 보편화돼 있는 반독점법, 토지공개념, 사회적 약자 보호제도, 협동주의 정책이 우리나라에서는 기업의 편의에 따라 종종 좌파 정책으로 내몰린다. 그리고 애국심,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방패를 내세워 비리ㆍ부조리 행위를 합리화한다. 삼성전자가 미국에서 반독점법을 위반한 담합행위로 3억달러(약 3,000억원)의 벌금을 물게 됐는데 이런 일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다면 틀림없이 기업 때리기 정책 또는 좌파 시민단체와 좌파 정부 때문이라고 덤벼들 분위기다. 단언컨대 지금 우리 사회에 반기업 정서는 없다. 다만 ‘반불법기업인 정서’가 날로 커지고 있다. 그만큼 우리 국민들은 세계시장에서 큰 활약을 하는 기업들을 자랑하고 사랑한다. ‘국부론’의 애덤 스미스가 자유시장경제의 보완서인 ‘도덕정서론’에서 강조한 사회적 자본, 시민사회 예찬론에 귀를 기울여보자. “아무리 이기적인 사람(기업인)이라 할지라도 도덕률을 가지고 있다. 이 도덕률 때문에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성공과 부에 즐거운 마음으로 관심을 갖고 비록 직접 혜택을 보지 못하지만 성공한 사람의 행복을 자기 자신의 행복으로 여길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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