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실천모임은 대기업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범위에서 당초 법안을 완화했다고 하지만 기업이 받는 타격은 여전히 치명적이다.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이 금산분리를 완화하겠다며 관련법을 개정한 지 불과 3년 만에 원점으로 돌리면서 더 큰 규제를 가하겠다고 하니 기업들로서는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정신이 나갈 지경이다. 이에 관련기업의 주식이 일제히 급락하는 등 벌써부터 시장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삼성그룹 같은 곳은 증권과 카드사를 떼내 별도의 금융지주회사를 세워야 하기 때문에 지배구조가 뿌리째 흔들리게 돼 있는 것이다.
어떻게든 재벌기업의 손발을 묶어놓겠다는 과격한 발상에서 나온 정치권의 금산분리 논의는 가뜩이나 취약한 금융산업을 약화시키고 제조업 분야에까지 악영향을 줄 우려가 크다. 해당 기업으로서는 그룹 전체 지배구조를 외부 압박에 의해 대대적으로 개편해야 하는 엄청난 리스크에 몰릴 수밖에 없는 일이다. 삼성만 해도 지분관계를 정리하자면 수십조원의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
세계에서 유례없는 중간지주회사를 도입하라며 윽박지르는 것도 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이다.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제한하는 나라는 미국과 한국 등 소수에 불과하다. 비은행 금융사의 경우에는 더욱 찾아보기 힘들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GE그룹 같은 중간금융지주회사(GE캐피털) 체제가 바람직한 모델이라고 주장하지만 재계는 사실관계조차 잘못 파악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국내에는 이미 산업자본의 금융지배를 엄격히 규제하는 장치가 촘촘히 만들어져 있다. 기존의 공정거래법을 강화하거나 감독기능만 보완해도 대주주의 전횡을 충분히 규제할 수 있다. 기업의 생사가 걸린 지배구조 문제에 대해 외국의 성공 모델을 따르라고 강요하고 나서는 뒷감당은 하지 않을 것이 바로 정치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