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한국기업은 인재사관학교?

얼마 전 싱가포르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현지에서 활동 중인 국내 대기업의 한 임원을 만나 싱가포르에 진출해 있는 우리 기업들의 인재관리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를 물어봤다. 그는 “싱가포르에서 한국 기업들은 인재사관학교”라고 짤막하게 대답했다. 한국 기업의 인재육성전략이 성공적인 것이냐고 되묻자 돌아온 그의 답변은 뜻밖이었다. 그는 “싱가포르에 진출한 많은 한국 기업들이 공들여 인재를 키워놓고도 제대로 붙잡아두지 못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의 주장은 대략 이렇다. 현지인을 직원으로 뽑아 쓸 만한 인재로 만들기 위해 기껏 오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 키워놓으면 경쟁사들이 해당 직원을 낚아채가는 통에 한국 기업들은 기껏 인재를 교육시켜 경쟁사만 좋은 일을 시키는 ‘인재사관학교’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한국 기업들은 인재를 키우기만 하고 지키지는 못하는 것일까. 문제는 바로 우리나라 기업들이 아직도 해외 법인들에 자율적인 인사관리 권한을 주지 않고 모든 것을 한국 본사가 결정하려고 하는 데 있다. 싱가포르와 같은 해외에서는 인재를 뽑을 때 연봉제 계약 형태로 실시하므로 임금을 정할 때는 각각의 사원들과 개별적으로 협상에 임하게 되는데 아직도 한국식 임금단체협상이나 호봉제 관행에 젖은 우리나라 기업은 본사 차원에서 해외 법인에 개별 직원의 인사교섭권을 허용하지 않고 있어 인재를 붙잡아 두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기껏 공들여 키운 인재를 경쟁사들이 보다 좋은 임금 조건을 제시하면서 스카우트해가도 자율적인 인사 권한이 없는 한국의 해외 법인들은 해당 직원을 지키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싱가포르 현지 법인의 한 관계자는 “경쟁사가 우리 인재를 스카우트하려 한다는 정보를 입수해도 매년 본사가 내려보낸 평균 가이드라인을 넘는 급여를 제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멀쩡히 눈뜨고 인력을 도둑맞는 한국 기업들이 많다”고 한탄했다. 국내 대기업들이 저마다 글로벌화를 외치며 해외 인재경영을 부르짖고 있지만 아직도 갈 길이 한참 멀다는 얘기다. 글로벌 인재경영의 현실이 이정도 수준이라면 우리 기업인들은 세계화 경영의 기초부터 다시 한번 되짚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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