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한림칼럼] 현대의 미신들

‘미신’이라고 하면 흔히 점치기나 굿 등을 떠올린다. 그러나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또 다른 종류의 미신이 있다. 전혀 합리적 근거가 없는 ‘현대의 미신’들을 굳게 믿고 고집하는 집단이 큰 힘을 지니고 그에 대한 반대를 용납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 같은 현대의 미신들의 대표적인 예가 ‘통행금지’를 폐지하면 치안이 문란해지고 간첩의 세상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뚜렷한 근거는 없이 막연히 그러하리라는 이 같은 믿음 때문에 온 국민이 자정까지 귀가하기 위해 엄청난 괴로움을 겪어야 했다. 사회에 엄청난 불편·괴로움 줘 그 외에도 학생들의 머리를 길게 놔두면 탈선을 할 것이라는 미신에서 한창 시기의 청소년들이 수도승처럼 삭발해야 했고, 컬러TV가 사치를 조장할 것이라는 미신에서 전세계에 컬러TV를 수출하는데도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흑백방송만 봐야 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음력설을 쇠는 것이 미신이라는 미신까지 기세가 등등했다. 사실 점치기나 굿 등의 미신을 믿거나 행하는 것은 주로 개인적 차원의 일이다. 그것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을 뿐 아니라 때로는 가벼운 마음으로, 심지어 놀이 삼아 행하기도 한다. 그러나 통행금지와 같은 ‘현대의 미신들’은 집단적으로 아주 강력한 형태로 횡행하며 그것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 엄청난 불편과 괴로움을 주는 통제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 같은 통제는 대부분 부자연스러운 강제나 금지조치인데도 그렇게 강제하고 금지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생각하게까지 만든다. 통행금지가 있는 것이 자연스럽고 학생은 머리를 빡빡 미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미신에 온 국민을 젖게 만든 것이다. 따라서 그 같은 믿음에 바탕한 통제를 폐지하는 일은 엄청나게 힘들다. 위에 예로 든 통제들이 수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끄떡도 않다가 정작 없어진 것은 그 같은 반대를 수긍해서가 아니라 정통성이 없는 군사정권이 민심을 얻기 위해 베푼 시혜였다는 사실은 이런 미신들이 얼마나 굳세고 질긴 것인지를 보여준다. 이제 이 같은 현대적 미신들은 다행히 없어져서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이다. 그러나 다른 수많은 ‘현대의 미신’들이 여전히 남아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최근에야 없어진 ‘호주제’가 대표적인 예이다.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가부장권의 상징적 잔재를 고집하고 그것을 없애면 가정이 파탄 나고 윤리가 땅에 떨어질 것이라는 미신 때문에 온 가족을 부양하는 어머니가 미성년 아들을 호주로 모시는 억지가 그렇게 끈질기게 이어져왔던 것이다. 어디 그것뿐인가. 고액권이 씀씀이를 크게 해서 물가를 상승시키고 부패를 조장할 것이라는 미신 때문에 온 국민이 지갑 속에 많은 지폐를 넣고 다니고, 수표를 거의 일상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불편을 겪고 있다. 대학입시와 과외를 둘러싸고는 그 같은 미신이 더욱 많다. 쉬운 문제를 출제하면 과외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미신, 대학별 고사가 과외를 조장한다는 미신 등 대학입시제도를 통해 과외를 없앨 수 있다는 미신, 그리고 과외란 나쁜 것이라는 미신까지 한나라의 교육정책 담당자들이 온통 미신에 흠뻑 빠진 결과 대학입시제도 전체가 만신창이의 불치병 상태로 빠져버렸다. 과학적 근거 없으면 없애야 그 외에도 한글만 쓰는 것이 애국이라는 미신에서 많은 사람이 굳이 한자를 모르도록 만든 것, 간통죄가 결혼 생활을 보호하고 약한 여성의 권익을 보장한다는 미신에서 국가가 개인의 성 생활의 세부를 참견하는 것, ‘어리석은’ 국민들이 여론조사에 오도돼 제대로 된 선택을 못할 것이라는 미신에서 대통령선거기간 전 어느 시점에서 여론조사 발표를 금지하는 것 등등 현대의 미신들의 예는 수없이 더 들 수 있다. 이런 많은 현대의 미신들을 그냥 절대 진리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따지고 검토해서 바꾸고 없애는 것이 진정한 과학적 생활 방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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