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10월 25일] 저작권보호는 합의금 장사가 아니다

직장인 정모씨는 지난 8월 한 작가에게 경고 메일을 받았다. 정씨가 인터넷 카페에 올린 리포트가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내용이었다. 정씨가 올린 자료는 이-북(E-book)으로 제작돼 800원에 팔리는 유료 문서였다. 저작권을 가진 작가는 대뜸 정씨에게 합의금 80만원을 요구했다. 정씨는 “인터넷에 무료로 돌아다니는 문서여서 저작권이 없는 줄 알았다”며 선처를 부탁했지만 작가는 들어주지 않았다. 정씨와 작가는 합의금 액수를 두고 의견을 나눴지만 입장 차가 너무 큰 탓에 합의에 실패한다. 사건은 결국 형사고발로 발전했다. 평소 고지식할 정도로 법을 잘 지켰던 정씨는 한순간에 범법자가 될 처지에 놓이게 됐다. 서울경제는 한국언론재단의 후원으로 8월 국내 저작권 침해 실태를 점검하고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기획기사 ‘저작권 침해 이대로는 안 된다’를 시리즈로 연재했다. 당시 가장 큰 딜레마가 저작권자를 보호하는 국내법은 지나치게 강화되지만 실효성이 매우 떨어진다는 점이었다. 법대로라면 정씨와 같이 단순 저작권 침해자는 적잖은 합의금을 주거나 형사사건으로 진행될 경우 벌금을 내야 한다. 그래도 인터넷 저작권 침해는 그다지 줄어들지 않는다. 불법 저작물을 유포하는 서비스제공업체(OSP)와 헤비 업로더들이 판을 치기 때문이다. 이들은 서버를 해외에 두고 국내 단속을 피하며 네티즌을 저작권 침해의 길로 유혹한다. 취재를 위해 만난 다양한 전문가들은 법의 강화를 주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저작권자들의 권리남용과 합의금 장사가 지나친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인터넷에서 불법으로 소설을 내려받은 혐의로 경찰에서 출석요구서가 날아오자 고민 끝에 한 학생이 자살한 사건이 국내에서 있었다. 취재를 위해 만난 일본 문화청 저작권과의 가와세 마코토 실장은 기자에게서 이 말을 전해 듣더니 크게 놀란 모습이었다. 그는 “일본에서는 저작권을 침해하지 말라는 경고로도 위반 행위가 사라진다”며 “경찰조사와 합의금이 필요한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요즘 일선 경찰서는 한 달 평균 500~600건에 달하는 저작권 고소 건으로 업무 과중에 시달린다고 한다. 그렇다고 출판사ㆍ음반사에 문의하면 저작권 위반이 결코 줄지 않았다고 답한다. 이 난리 속에 웃고 있는 건 건당 수십ㆍ수백만원의 합의금을 챙기는 법무법인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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