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와 재계가 ‘2라운드 공방’에 들어갔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원안대로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내년 3월 말까지 마련될 시행령을 놓고 치열한 줄다리기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특히 출자총액제한 졸업요건을 놓고 시행령 조문을 마무리하는 마지막까지 공방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가 롯데 등 3개 그룹에 대한 부당내부거래 조사에 들어간 것은 양측간 대립의 서곡처럼 비쳐진다.
◇출자총액규제 졸업대상이 관건=당장 관심은 개정안에 반영된 출자총액제한제도의 4대 졸업기준이 어느 정도로 구체화되느냐 하는 점이다. 이에 따라 졸업대상이 크게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내년에 최소 10개 그룹이 졸업할 것으로 예정된 가운데 재계는 규제대상을 현행 17개에서 5개까지 줄이는 데 안간힘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재계는 우선 주요 졸업기준 중 하나인 ‘소유-지배 괴리도(의결지분율에서 소유지분율을 뺀 값) 25%포인트’ ‘의결권 승수(의결지분율을 소유지분율로 나눈 값) 3.0 이하’를 개선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계산방식을 개선해 총수일가의 직접소유 지분뿐만 아니라 계열사를 통한 간접소유 지분까지도 포함시켜달라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계열사 지분을 포함할 경우 괴리도가 낮아져 졸업하기가 한층 쉬워진다.
내년 4월부터 폐지되는 부채비율 100% 이하 졸업기준도 논란거리다. 현재 삼성ㆍ롯데ㆍ포스코 등 5개 그룹이 이 기준을 충족해 출자총액규제에서 벗어나 있지만 내년 4월부터는 규제대상에 다시 포함된다. 재계는 이를 3~5년 이상 연장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삼성이 직접 혜택을 받도록 돼 있다. 출자총액제한제도에 포함되지 않는 예외인정 출자를 더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재계는 현재 5년간 예외인정되는 현물출자ㆍ영업양도, 물적분할, 분사 등 ‘기업구조조정 관련 출자’를 8년으로 늘려주거나 아예 기한을 두지 않고 적용을 제외하는 방안을 요청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국가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예외인정으로 규정된 ‘신산업 분야 출자’도 적용제외로 변경하고 신산업에 대한 기준을 명확히 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적대적 M&A 방어 대비책도 뜨거운 감자=개정 공정거래법 통과로 재계의 관심은 적대적 M&A 방어책으로 쏠리고 있다. 개정 법에서는 금융계열사 의결권 한도를 현행 30%에서 오는 2006년부터 단계적으로 5%씩 축소해 2008년에는 15%까지로 줄이도록 했다. 이 경우 삼성그룹은 삼성생명 등 금융계열사 지분의 2.8%에 대한 의결권을 상실한다.
증권거래법 등 법령 개정 수위를 놓고 국회와 재경부ㆍ공정위 등과 막판 기싸움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기업들의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시행령에 포함되도록 검토하고 있다. 특정 주식을 5% 이상 매수할 경우 5일 이내에 공시하도록 규정한 ‘5%룰 공시제도‘ 강화방안이 대표적인 예다. 재계는 이 제도를 매수 다음날까지 공시하도록 요건을 강화해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을 늘려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시행령에는 공시내용에 경영진 변경, 지배구조 개편, 자본 및 배당에 관한 계획까지 포함시키는 방안도 들어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상당 부분 도입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어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 이밖에 대주주에게 보통주보다 많은 의결권을 주는 ‘차등의결권’제도 , 적대적 M&A가 시도될 경우 50%까지 낮은 가격의 유상증자로 전체 주식 수를 늘려 경영권 위협을 무력화하는 ‘독약처방’(poison pill) 제도 등도 실효성 있는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재계, ‘투기자본 폐해 크다’=전국경제인연합회는 론스타ㆍ칼라일ㆍ뉴브리지캐피털 등 재무적 투자자에 의한 은행권 직접투자도 국가경제 및 국내산업 성장에 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으며 헤르메스펀드ㆍ소버린 등에 의한 간접투자도 적대적 M&A 시도나 단기 시세차익에 의한 국부유출 우려가 크다고 항변한다.
CDMA 장비업체인 현대시스콤의 기술 해외유출 논란 등을 예로 들고 있다. 외국자본은 자본이득을 실현시켜줄 또 다른 외국자본이 출현하면 언제든 철수할 가능성이 존재하며 이 경우 핵심기업 및 기술이 외국으로 유출될 수 있다는 것. 재계는 선진국 수준의 다중의결권주식제도, 제3자 신주배정 허용 등의 경영권 방어수단을 요구하고 있다. 사모펀드의 활성화와 연기금 주식투자의 제한적 허용 등 경영권 안정을 위한 환경 조성도 재계의 주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