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국회정쟁에 개혁법안 처리지연

국회정쟁에 개혁법안 처리지연경제전문가들은 현 경제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할 수 있는 방법은 조기 구조조정뿐이라고 입을 모은다. 외국인들도 공감한다. 외국인들은 구조조정이 조금이라도 더 지체되면 「㈜대한민국」에서 당장이라도 돈을 뺄 태세다. 가뜩이나 이탈조짐이 나타나는 터에 핫머니 이탈은 환란 재연을 의미한다. 구조조정은 구호만 갖고 되는 게 아니다. 밑줄기(법토대)가 구비돼야 한다. 그런데 일을 해야 할 사람이 졸고 있다. 세금으로 일하는 국회의원이 구조조정의 장애물로 등장, 오히려 세금을 갉아먹고 있다. 구조조정뿐만 아니다. 위기경제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경제참여자들의 결집이 필요하다. 사회적 합의를 위해 필요한 객체 중 하나가 노동자다. 그러나 근로시간을 단축할 근로기준법 개정안도 잠을 자고 있다. 정치·경제·사회 모두 「제2의 환란」을 잉태하기에 딱 맞는 여건을 형성하고 있으며 그 토대를 국회의 정쟁이 제공하고 있다. ◇기약없는 「핵심 5개 개혁법안」=8월 말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주요 법률안은 67건(의원입법 포함). 경제 부분에 관련된 핵심 법률안만 32건에 달한다. 세제 관련법안이 16건, 국고 관련법안이 3건, 외환·소비자보호 관련법안이 4건이며 금융정책에 관련된 법안도 9건이나 된다. 특히 추경예산안·금융지주회사법·기업구조조정투자회사(CRV)법·조세특례제한법·소득세법 개정안 등은 핵심 5개 법안으로 꼽힌다. 2기 경제팀의 최대 과제로 시장불안을 제거할 공적자금 추가 조성 문제도 걸려 있다. 재경부 관계자는 『현 계류법안들은 평상시의 민생현안 문제가 아니라 국가 존망과도 걸려 있는 핵심 내용들』이라고 강조했다. ◇기형화된 구조조정=장애인·노인층에게 면세저축이 가능하도록 한 소득세법 개정안의 경우 일반 국민은 법안 통과가 다소 늦어져도 고통을 감내할 수 있다. 근로시간을 단축시킬 근로기준법에 대해서도 노동자들은 희생한다. 그러나 구조조정 관련법안은 상황이 다르다. 경제상황이 여유를 부릴 만큼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언제 구멍날지 모르는 낙하산과 같다. KDI 관계자는 『낙하산을 타고 소프트랜딩(연착률)해야 할 경제가 낙하산에 구멍이 생겨 수직하강하는 상황이 도래할지 모른다』며 『국회가 낙하산의 바람을 빼고』있다고 말했다. 금융·기업 구조조정 관련법안은 이미 늦었다. 법이 통과돼도 시행령 마련에 시간이 걸린다. 국제통화기금(IMF)과 합의한 구조조정 일정도 깨질 지경이다. 2차 금융 구조조정의 핵심축인 금융지주회사가 대표적인 예. 정부는 오는 10월 말까지 은행 경영평가 작업을 마무리한 뒤 11월 지주회사를 출범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는 해몽(解夢)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투신권에 유동성을 불어넣어 시장을 활성화시키려는 목적으로 도입된 비과세 펀드도 기형화돼 있다. 금감원은 법을 위반하며 투신에 비과세 상품 판매를 허용했고 가입자들은 최악의 경우 받을 돈을 고스란히 뱉어내야 될지도 모른다. ◇세금 축내는 국회=국회 정쟁은 세금까지 축내고 있다. 워크아웃을 보완하는 장치로 도입될 사전조정제(회사정리법 개정안)와 CRV법. 시장불안을 야기하는 부실기업을 조기에 솎아내고 신속한 구조조정을 도모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난 법안이 통과되지 않아 부실털기 작업이 지연되고 공적자금 투입은행의 부담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대우와 대우중공업은 기업분할과 관련된 조세감면이 이뤄지지 않아 수개월째 분할작업이 늦어지고 있다. 분할작업이 늦어지면서 영업에 차질이 빚어지고 이는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들의 손실로 전가된 상황이다. ◇답습하는 97년, 외국인이 바라본다=97년 환란에는 국회 정쟁이 큰 몫을 담당했다. 3년여가 지난 지금도 같은 상황이 벌어질 지경이다. 지난 8월 사상 최대의 외국인 자금이탈을 겪은 데 이어 9월들어 외국인들의 눈은 전례없이 날카로워졌다. 외국인들은 아직까지는 한국 경제를 버리지 않고 있다. 그들은 한국 경제가 구조조정만 제대로 이행하면 희망이 있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인내를 요구할 시간은 그리 많이 남지 았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거시악재의 틈바구니 속에서 외국인 이탈은 곧 금융시장 붕괴와 제2의 환란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정책 스케줄을 미루면 구조조정 일자가 늦어지고 이는 「구조조정 마무리를 통한 금융시스템 복원」이 불가능해짐을 의미한다』며 『정쟁이 지속되면 정책당국자들이 외국자금을 끌어들일 정책운용의 묘를 찾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영기기자 YGKIM@SED.CO.KR입력시간 2000/09/20 18:50 ◀ 이전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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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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