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업들이 엔저를 등에 업고 사상 최대 실적 달성의 축포를 터뜨리는 동안 한국 기업들은 엔저에 발목이 잡히며 실적이 뒷걸음치고 있다.
7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코스피에 상장된 기업 가운데 시가총액 및 거래량 상위 200곳의 올해 영업이익 추정치는 104조432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영업이익 108조7,598억원과 비교해 4.4% 감소한 수치다. 이들 기업의 올해 매출이 전년 대비 0.7%의 성장이 예상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내 기업의 수익성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증거인 셈이다.
정승재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기업 이익에 대한 기대치가 낮은 상황에서 엔화 약세가 국내 기업의 수출 개선을 더디게 할 변수로 등장했다"며 "뚜렷한 호재와 악재가 손에 잡히지 않는 상황에서 환율 민감도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최근의 지속적인 엔화 약세는 일본과 직접 경쟁하는 국내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실제로 한국과 일본의 수출 상위 100대 품목 중 양국이 서로 겹치는 품목은 절반이 넘는 55개에 달한다. 이들 품목이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54%에 달한다. 결국 엔저가 가속화될수록 수출 비중이 높은 국내 기업들의 실적에도 작지 않은 타격이 예상된다는 의미다.
글로벌 경기불황 속에 새로운 장애물로 나타난 엔저는 국내 수출 기업들의 실적악화로 직결되고 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사들이 추정한 올해 삼성전자(005930)의 연간 영업이익은 지난해보다 33.3% 감소한 24조5,644억원에 그친다. 엔저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현대자동차 역시 전년 대비 7.6%의 영업이익 감소가 점쳐지고 있다.
LG화학(051910)(-17.9%), SK이노베이션(096770)(-76.9%), 롯데케미칼(011170)(-10.5%) 등 대표적인 수출 효자품목인 정유·화학업종의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도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이 밖에 현대중공업(009540)은 올해 3조원에 가까운 적자가 전망되며 삼성중공업(010140)과 대우조선해양(042660)도 전년 대비 영업이익 감소가 유력한 상황이다.
일본의 노무라증권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기업 투자심리 악화와 불확실성 증대 등을 고려할 때 이번 엔화 약세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과거보다 더 클 것"이라며 "일본은행(BOJ)의 추가 양적완화 조치로 엔화 가치가 달러당 125엔까지 떨어질 경우 자동차·철강·선박 등을 중심으로 한국의 수출경쟁력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