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6월 12일] 진화를 외면한 미국

‘태산이 울리더니 결국 손아귀에 쥔 것은 쥐 한 마리밖에 없다’는 옛말이 있다. 처음의 기세에 비해 결론이 허무할 때 흔히 사용되는 표현이다.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대변되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원지 월가의 천문학적인 연봉과 이를 둘러싼 워싱턴 정가의 ‘몽둥이 휘두르기’를 보면 딱 그 짝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지난 10일 ‘월가의 탐욕’을 견제하겠다던 당초 목표를 접는다고 밝혔다. 이를 놓고 월가의 집요한 로비가 성공했다거나 미 행정부와 월가의 구분을 흐릿하게 만드는 ‘회전문 인사’의 결과물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가장 큰 배경은 구제금융을 받은 은행들이 잇달아 지원자금을 갚겠다고 나선데다 만신창이가 됐던 월가도 인상적인 복원력을 보여주기 시작해 ‘국민의 혈세가 들어간 금융기관에서 과도한 연봉을 받는 것을 묵과할 수 없다’던 전제조건이 깨졌기 때문이다. 월가에서는 그렇지 않아도 “연봉규제는 월가를 바라보던 인재들의 이탈이나 외면을 초래한다”며 반발해오던 터라 이번 연봉규제 백지화에 대해 ‘당연한 귀결’이라는 분위기가 짙다. 월가의 정서와 달리 이 결과를 지켜보는 미국민들은 물론, 기자 역시 찝찝한 기분을 지우기 힘들다. 이번 ‘월가의 연봉규제’라는 문제의 핵심은 ‘시장=탐욕’이라는 그동안의 등식을 놓고 앞으로도 이를 인정할 것이냐 바람직한 사회를 위해 탐욕에 대한 사회적 견제장치를 작동시킬 것이냐의 선택이었다. 이는 동시에 시장을 끝없이 진화시키는 동력이라면 무엇이든 수용해야 한다고 여기는 시장만능주의적 세계관을 고수할 것이냐 아니냐의 선택이기도 했다. 정책결정권자 또는 정치지도자들이 사회 현안에 대해 내리는 결정에는 ‘어쩔 수 없는 현실’과 ‘이렇게 됐으면 하는 이상’의 충돌이 항상 내재되기 마련이다. 그렇다 해도 오바마 행정부의 연봉규제 백지화 결정은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사상 초유의 세계적 비용을 치르고도 건진 것 없이 원점으로 회귀한 셈이 됐다는 점에서 아쉽고도 아쉽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