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에서 다양한 주제로 거침없이 말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사회의 민주화 수준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토론에 참여하는 논객이나 청취자의 수준이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이 높아졌어요." KBS 1라디오 토론 프로그램 '열린 토론'(월~토 오후7시20분)의 진행자 시사평론가 정관용(44)씨는 오는 25일로 방송 1,000회를 맞는 소감을 묻는 질문에 우리 사회의 성숙도를 얘기했다. 정씨가 본격적으로 마이크를 잡은 건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83년 서울대 사회학과 재학 시절 사회과학대 학생회장을 역임했고 김영삼 정부 시절 청와대 행정관을 역임했던 그는 96년 SBS '뉴스대행진' 진행자를 맡은 후 CBSㆍEBS 등을 거쳐 2003년부터 KBS '열린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KBS '심야토론', MBC '100분 토론' 등 매주 1회 방송하는 TV 토론 프로그램이 역사는 더 깊지만 매일 토론의 장을 펼친 건 '열린 토론'이 처음이다. 매일 방송하는 만큼 '열린 토론'의 강점은 주제의 다양성과 광범위함. TV 토론 프로그램이 묵직한 정치 주제에 국한됐다면 '열린 토론'에서는 경제 문제를 비롯해 교육ㆍ문화ㆍ스포츠까지 우리 사회의 이슈가 되는 모든 주제를 토론의 도마 위에 올린다. KBS 1TV '심야토론'도 진행하며 사실상 KBS의 모든 토론 프로그램을 맡고 있기도 한 정씨는 "다양한 주제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만 다룰 수 있는 장점"이라고 말했다. "TV에 비해 라디오에선 토론자들이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됩니다. 집중도도 낫고 별다른 긴장도 하지 않습니다." "이 프로그램에서 다루는 사안에 대해 합의도 못 내고 타협도 안한다"는 비판에 대해 정씨는 "원래 토론이란 그런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합의를 하려면 토론이 아니라 회의나 협상을 해야죠. 토론 프로그램에선 논객이 자신의 편을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서로 다른 의견을 토론자나 청취자가 듣는 것만으로 토론 프로그램의 역할은 충분합니다." 1,000회 동안 출연한 패널 수만 해도 연 인원 4,000명. 어떤 패널이 가장 훌륭했냐는 질문엔 "마이크를 놓기 전까진 밝히지 않겠다"며 넘겼다. 다만 "직접 정책을 만들어 놓고 토론 자리를 피하는 정부 당국자들은 비겁하다"고 일갈했다. 토론 프로그램 진행자다 보니 정치권의 러브콜도 있을 법 하다. 정씨는 "이제 그런 말도 안 나올 때가 되지 않았냐"고 손사래를 쳤다. "앞으로 30년간 시사평론가로만 사람들과 만나기로 다짐했습니다. 이제 겨우 10여년이 지났으니 남은 20년 열심히 방송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