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했다. 이번 한미은행 파업이 바로 그 꼴이다.
20년 만에 첫 파업에 들어간 노조의 서툰 협상과 한국적 노조환경을 무시한 외국계은행 출신 경영진의 어설픈 대응이 일으킨 시너지 효과(?)가 바로 ‘금융권 최장기 파업’의 기록이다. 결국 6일 이정재 금융감독위원장까지 나서 협상타결을 촉구하는 긴급 담화문까지 발표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서툰 ‘굿판’은 노조가 먼저 시작했다. 파업 후 첫 협상에 가지고 들어간 노조측 요구안에는 ‘36개월치 보로금 지급’과 ‘파업에 참가하지 않은 노조원에 대한 보로금 지급금지와 해고요구’ 등 노동운동의 도덕성을 뿌리째 뒤흔드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노조측은 “흥정을 할 때는 가격을 높이 부르고 시작하는 것”이라며 요구안들이 실제 의도와는 달리 많이 과장됐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노조의 이 같은 해명은 요구사항에 대한 도덕성과 타당성을 검증하지도 않은 채 극한의 투쟁수단인 파업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심지어 금융노조도 이 같은 한미은행 노조의 요구안에 당황했다. 시중은행 노조의 한 간부는 “금융노조의 긴급한 중재로 수정 요구안을 제출했지만 이미 언론에 보도되고 난 후여서 때가 늦었다”며 “협상 명분을 새롭게 만드는 데만 일주일이 걸렸다”고 아쉬워했다.
경영진도 노조와 굿판을 벌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오는 11월께 씨티은행 서울지점과 한미은행이 합병할 예정인데도 씨티은행 노조에 합의해준 요구사항에 대해 한미은행 쪽에는 합의를 거절했다. 한미은행 노조는 씨티은행 쪽에 합의해준 것과 같은 ‘전공ㆍ지역ㆍ경력 등을 고려해 인사발령을 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 노조와 협의한다’는 조항을 사측이 동의해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사측은 ‘전공ㆍ지역ㆍ경력 등을 고려한 인사발령’에는 동의하지만 ‘노조와 협의한다’는 부분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버텼다. 이후 양측은 주도권 싸움만 하다 일주일을 소비했다.
노조위원장 출신의 한 은행 임원은 “강한 노조는 유연한 협상을 하고 유능한 경영진은 타협할 줄 안다”고 말했다. 한미은행 노사가 이번 파업을 계기로 진정으로 강한 노조와 유능한 경영진으로 다시 태어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