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0월24일] 메리 마셜


애덤 스미스도, 마르크스도 그랬다. 리카도나 맬서스도 마찬가지. ‘경제학(Economics)’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적이 없다. 자신의 학문을 도덕철학이나 정치경제학으로 여겼을 뿐이다. 용어로서 경제학의 시초는 앨프리드 마셜. 수요공급 곡선에서 외부경제, 소비자 잉여 등의 개념을 뽑아낸 사람이다. 명구 ‘차가운 이성, 따뜻한 가슴’으로도 유명하다. 대표저술 ‘경제학 원론(1890년)’은 요즘도 경제학 교과서의 원형으로 꼽힌다. ‘경제학’이 정치경제학으로부터 독립한 것은 1879년. 마셜 부부의 공저 ‘산업경제학(Economics of Industry)’을 통해서다. 산업경제학이 메리 마셜(Mary Marshall)의 강의록을 기본으로 쓰여졌으니 용어 ‘경제학’의 숨은 저작권자는 메리인 셈이다. 1850년 10월24일 성직자 집안에서 태어난 메리는 집안에서만 교육 받았지만 케임브리지의 입학허가를 얻은 최초의 여성. 맬서스와 인구논쟁을 벌였던 철학자이자 목사인 할아버지 윌리엄 페일리의 영향을 받았는지 경제학에 두각을 나타냈다. 졸업 후 강사로 근무하던 메리는 1877년 경제학 스승이었던 8년 연상의 앨프리드와 결혼한 지 10년 후부터 내조에만 힘썼다. 병약했던 앨프리드가 현대 경제학의 기본원리를 정교하게 집대성한 것도 아내의 헌신적인 뒷바라지 덕이다. 사별(1924년)한 후에도 메리는 재산과 대대로 내려온 서적을 모교에 기증, 경제도서관을 꾸며 죽을 때까지 사서로 봉직하며 남편의 제자들을 돌봤다. 도서관을 가장 많이 이용했던 사람이 케인스. 뉴턴에서 처칠까지 10여명의 위인전을 써낼 때 메리를 포함시켰다. 케인스는 메리 전기의 끝 문장을 이렇게 썼다. ‘아침과 같은 겸손, 대낮 같은 명랑, 저녁 같은 온화, 그리고 한밤과 같은 침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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