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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사설/9월 14일] 부질없는 HP의 오라클 소송

컴퓨터 업계의 최강자들이 한편의 드라마를 선보이고 있다. 이 드라마는 미국 컴퓨터 업체인 휴렛팩커드(HP)의 마크 허드 전 최고경영자(CEO)가 HP에서 쫓겨나면서 시작됐다. 허드는 지난달 공금 유용과 성희롱을 했다는 의혹을 받아 이사회의 압력으로 HP를 떠났다. 그는 HP에서 5년간 CEO로 재직하면서 HP를 세계 최고의 컴퓨터 제조업체로 등극시켰다. 하지만 4,000만달러에 달하는 공금 유용 혐의와 여성 직원과의 부적절한 스캔들이 그의 발목을 걸고 넘어져 퇴출됐다. 그런데 6일 미 소프트웨어 제조회사인 오라클이 하드웨어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경쟁사가 쫓아낸 '죄인' 허드를 과감하게 공동사장이자 이사회 이사로 선임한다고 발표했다. 당황한 HP는 회사 기밀 유출을 우려해 급히 허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허드가 떠나는 조건으로 퇴직금 1,220만달러를 받고 비밀 준수 이행을 약속한 만큼 신의성실 원칙에 따라 이를 지킬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HP가 소송에서 승리하기는 다소 버거울 것으로 보인다. HP가 소장을 제출한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 소재 법원은 과거 비슷한 사례에 허드와 입장이 비슷한 피고인의 손을 들어준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두 업체는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한다. 허드는 어쩔 수 없이 HP의 회사 기밀을 자신이 몸담게 될 오라클에 누설할 것이다. 법조계는 HP가 패소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번 소송은 허드와 오라클에 위협적인 '경고사격'이 될 수 없을 것이다. 허드는 그가 떠날 때 HP와 맺은 계약 조건이 무엇이었든지 간에 더 이상 HP와 HP의 주주들에게 책임이 없다. HP가 소송을 제기하든, 비난을 쏟아내든 그것은 그들의 문제일 뿐 허드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 대승적 차원에서 이 문제를 살펴봐야 한다. 우선 동종업계에서 고위 임원들이 자유로이 거처를 옮기는 것은 대개 그 분야에 큰 이득이 된다. 퇴직시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고 해서 고위 임원들이 그동안 습득한 경험과 반짝이는 아이디어, 전문 지식을 업계에서 사용하지 못하도록 주장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생각이다. 또한 기업은 퇴출된 직원이 떠난 후에도 자신이 몸담았던 회사에 끝까지 충성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영원히 우호적인 관계는 없다는 게 기업의 생리다. 특히 이번 사례처럼 뒤끝이 좋지 않게 끝난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HP는 지금이라도 생각을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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