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日 '소비둔화-경기침체' 악순환

매출 크게 줄어 기업 가격인하 출혈 경쟁일본에 디플레이션이라는 악성 질병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경기 둔화를 피부로 느끼고 있는 소비자들은 지갑을 굳게 닫았고, 기업들은 냉담한 소비자들의 눈길이라도 받아보기 위해 앞다퉈 제품 가격을 인하하고 있다. 물가 높기로 유명한 일본에서 모든 제품을 100엔에 판다는 이른바 '100엔숍'이 큰 인기를 끈데 이어 급기야 '88엔숍'까지 등장했다는 사실만 봐도 일본의 물가 하락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 같은 현상은 기업의 채산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음으로써 국민들의 소득 수준을 떨어뜨리고 결과적으로는 경기를 한층 악화시키는 악순환을 일으킬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 최근의 물가 하락이 기업들의 첨단 기술 개발이나 유통구조 개선 등 바람직한 비용절감 효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수요 감소를 타개하기 위해 벌이고 있는 출혈 경쟁에서 야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가 하락과 경기 후퇴가 연쇄반응을 일으키는 악성 디플레이션의 고리가 형성되고 있다는 조짐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자산시장 동향과 경제지표를 살펴볼 때 일본의 디플레 진척도는 심각한 수준이다. 닛케이지수는 과거 15년만의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고 부동산 가격은 버블 붕괴 이후 지금까지도 꾸준한 하락 곡선을 그리고 있다. 물가도 소비 심리의 위축과 함께 가파른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다. 1월중 일본의 가계소비는 전년 동기대비 0.5%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기업 매출이 둔화되고 실업률이 높아지는 등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확산됨에 따라 일본의 국민들이 좀처럼 지갑을 꺼내려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소비 둔화 추세에 발맞춰 도쿄의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달중 과거 최대의 낙폭인 -1.1%를 기록했으며, 전국 기준으로도 소비자물가가 지난해 12월까지 무려 16개월동안 하락세를 보여 지난 71년 통계 작성이 시작된 이래 가장 긴 내리막을 탔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수요 감소에 따른 물가 하락과 자산가격 하락은 소비자들뿐 아니라 과다채무에 시달리는 기업의 활동을 위축시킨다며, 일본에 자산 디플레와 채무 디플레가 뒤섞인 복합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하고 있다. 정책 입안자들에게도 디플레 압력은 큰 부담이다. 디플레 발생 가능성을 고집스럽게 부인하는 일본은행이 지난달 두 차례나 금리 인하를 단행한 것도 결과적으로는 이를 완화시키기 위한 대책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진다. 또 연립 여당이 최근 발표한 긴급경제대책도 부동산 및 주식시장 활성화를 통한 디플레 극복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일본이 디플레 압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적절한 금융정책과 함께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시장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춤으로써 자금 흐름의 길을 터주는 일이 급선무라고 거듭 지적해 왔다. 하지만 정치권의 불안과 정책 입안자들간의 이견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일본이 얼마나 효과적인 디플레 방지책을 구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신경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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